SK·애경 관계자들 항소심 첫 재판···1심, CMIT·MIT-폐질환 인과성 불인정
과학자들 “법원이 의견서 오독” 비판···항소심서 추가 의견서 제출 예정
피해자 측 ‘과학적 방법론’ 강조···“일부 오류 있다고 배척하면 안 돼”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이 살균제 제조, 판매 기업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이 살균제 제조, 판매 기업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SK케미칼·애경 등이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사용한 물질과 질병 사이의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1심 판결이 잘못이라는 취지의 전문가 의견서가 항소심에 추가로 제출된다. 전문가들은 1심 무죄 판결이후 기자회견까지 열어 법원이 자신들의 의견을 오독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윤승은 부장판사)는 18일 오후 4시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는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의 2심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검찰은 원심이 사실을 오인하고 법리를 오해했다는 이유로 항소했다고 설명하며, 항소심에서 전문가들의 진술서 내지 의견서를 추가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 중에는 1심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과학자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1심에서의 전문가 증언과 의견서가) 오독돼 새로 보완된 사실을 제출하려 한다”며 “전문가들이 항소심에 증거로 내달라고 요청했고, 취합되는 대로 제출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1심 무죄 판결 이후 전문가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법원이 과학적인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과학자들은 증명을 위해 가설을 설정하고 그 가설을 반박하는 실험을 한 뒤 결국 반박이 되지 않으면 그 가설을 인정하는 또는 확률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과학적인 연구 방법인데, 1심은 이 내용을 반대로 해석했다는 주장이다.

과학자들은 SK케미칼 등 제품의 원료가 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이 폐 손상·천식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서를 냈지만, 1심은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실험결과를 가지고 인과성이 명확하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인과관계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들의 변호인도 진술 기회를 얻어 “위해성을 밝히기 위해 동물실험 결과 등 과학적 증거들이 제출했다”며 “과학에서는 일부 오류가 있다고 그 연구 자체를 배척하지 않는다.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항소심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인과관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의 의견서가 새 증거로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 이후 새 증거를 검사가 제출한 것은 형사소송법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1심 선고 이후 검찰이 만들어낸 증거라면 형사소송법상 원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1심에서 4번의 준비기일과 46번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는데 그 당시 제대로 제출하거나 증인신청 등을 할 수 없었다면 부득이한 사유에 대한 소명이 있어야 한다”며 “참고자료일 뿐 서증(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는 문서)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홍 전 대표 등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1심 재판부는 전문가를 포함해 34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10만 쪽 가까운 증거 기록을 검토하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뒤 심사숙고해 결론을 내렸고, 그 결론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부는 오는 7월13일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5월까지 전문가들의 의견서를 접수하고, 이후 평가와 판단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검찰 측 의견을 수용한 결과다. 재판부는 6월 중순까지 전문가 의견서를 제출해야 피고인들도 반대 의견서를 쓸 수 있다고 당부했다.

홍 전 대표는 2002~2011년 CMIT/MIT 등으로 만든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해 인명 피해를 낸 혐의를 받는다. 그는 2002년 SK케미칼이 애경산업과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출시할 때 대표이사를 지냈다. 안 전 대표는 CMIT/MIT 등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을 알고도 이를 적용한 가습기 메이트 제품을 판매한 혐의다. 그는 1995~2017년 애경산업 대표를 지냈다.

2002~2011년 제조·판매된 가습기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옥시싹싹 피해자는 뉴가습기당번과 가습기당번을 합쳐 3578명이다.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 제품 피해자는 총 1415명이다. 지난 7일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 인원은 7442명이다. 이 가운데 판정이 끝난 생존자는 1025명, 사망자는 25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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