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D 노선 여의도·용산 연장, 강남 직결 검토
여론에 떠밀려 계획 번복···정부 정책 신뢰성 훼손 우려도
“원안대로 진행할 경우 전국적인 지자체 반발 불가피”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당정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D노선을 여의도·용산까지 연장하거나 강남으로 직결하는 논의를 시작했다. 김포·검단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방안이지만 실제 적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제성 등 다시 검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은 데다 일부 지역의 요구만 반영될 경우 전국적인 지자체 반발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일각에선 적법한 절차를 거친 국가 철도망 사업이 지역 여론에 밀려 변경된다면 정부의 정책 신뢰도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민 반발에 GTX-D 노선 변경 검토···기존 계획 한 달 만에 뒤집어
18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당정은 GTX-D 열차 중 일부를 현재 건설 중인 GTX-B(인천 송도~남양주 마석) 선로를 공유해 여의도나 용산역까지 연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노선이 연장되면 GTX-D의 종점은 부천종합운동장역에서 여의도나 용산으로 변경된다. 하지만 연장 발표 이후 김포·검단 주민들이 또다시 반발하면서 국토부는 GTX-D에 강남 구간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선상에 올려놨다.
국토부의 이번 방침은 기존 발표된 계획을 뒤집는 것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달 공개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에 따르면 GTX-D는 김포 장기와 부천종합운동장을 잇는 단거리 노선으로 잠정 확정됐다. 당초 경기도는 ‘김포∼강남∼하남’ 노선을, 인천시는 인천국제공항과 김포를 양 기점으로 강남으로 연결되는 ‘Y자’ 노선을 제안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GTX-D를 강남까지 연결할 경우 기존 노선과 상당 부분 중복된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는 예산 규모와 사업성을 고려해 노선 계획을 짠 만큼 노선 변경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대선 앞두고 민심 잡기 나서”···정책 신뢰성 저하 우려도
업계에선 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심 잡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당초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가용 예산, 경제성, 기존 노선과의 중복 등을 이유로 GTX-D의 서울 직결을 반대해 왔다. 하지만 김포·검단 등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자 한발 물러난 모습이다. 김포·검단은 20~40대 나이대가 집중된 지역이다. 4·7 재보선 참패 이후 청년 표심 잡기에 주력하고 있는 여당과 정부로선 마냥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GTX-D 재검토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일 ‘김포골드라인’을 직접 탄 직후 노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4차 국가철도망계획이) 그런 방식으로는 안된다”고 말하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앞서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부지역에 상당한 민심의 이반이 있다”며 노선 재검토를 제안했다.
정부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결론을 내린 교통망 계획을 정치적 논리에 따라 바꿀 경우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연구기관 용역을 통해 정한 국가 철도망 사업을 여론에 휘둘려 쉽게 뒤집을 경우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저해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초안과 달리 노선 변경·연장이 필요하다면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 초안을 마련한 한국교통연구원이 수요 조사 등 연구를 허술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원안대로 진행되도 ‘산 넘어 산’···“전국에서 철도망 확충 요구 빗발칠 수도”
GTX-D가 원안대로 진행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10조원 이상 사업비가 필요한 데다 기존 노선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또 강남 직결 노선을 채택하게 되면 해당 노선에 대한 경제성과 타당성 검토를 위한 연구용역을 추가로 실시하게 된다. 이 경우 기존에 다음 달로 예정됐던 4차 국가철도망 확정고시가 연기될 수 있다. 여의도·용산 노선 역시 GTX-B 민자 사업자와의 협상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각 노선별 사업성 등 이해관계가 틀어질 경우 노선안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른 지자체와의 형평성 논란도 존재한다. 현재 지방에선 철도망 확충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실정이다. 충청도에선 ‘충청권 광역철도’(대전~세종)의 청주 도심 노선 반영을, 대구시와 광주시는 4차 국가철도망 계획안에서 ‘달빛내륙철도’(대구~광주) 건설을 재차 촉구하고 있다. 경북 영주시와 울진군, 충남 천안시 등 12개 지자체도 최근 신규 사업에서 제외된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조기 건설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 GTX-D의 노선이 변경된다면 다른 지자체들의 사업 재검토 민원도 쏟아질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논리로 한 사업이 흔들리면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만약 정부가 기존 GTX-D 계획을 변경하게 되면 철도망 확충을 요구하는 다른 지역의 요구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