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매물 전년 대비 37% 줄어
세금 부담에도 다주택자들 버티기
매수자, 비싼 집값에 매입 주저
올해 들어 거래량도 감소세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아파트 시장에 매물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모습이다. 다음 달 보유세와 양도세 부담이 커짐에도 다주택자들이 버티기에 들어가면서다. 이들은 시세 수준의 호가를 고수하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반면 매수자들은 치솟은 집값과 막힌 대출 탓에 선뜻 매입에 나서지 못하면서 거래 절벽이 본격화 되는 분위기다.
◇다주택자 매물 거둬들여···“규제 완화 통한 집값 상승 기대감”
15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14일 기준 4만7273건이다. 전년 동기 7만4104건 대비 37% 가량 줄었다. 매물은 지난해 6월 8만건으로 정점을 찍고 점차 줄더니 8월부터 4만건대로 내려앉았다. 올해 2월 말부터 보유세 기산일인 6월 1일 전에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다주택자들이 늘면서 4만7000건까지 올라갔지만 정부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당초 정부는 다주택자를 주택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을 강화해 주택 처분을 유도한다는 계획이었다. 특히 다음 달 개정된 소득세법과 종부세법 시행을 앞두고 올해 다주택자의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개정된 세법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조정대상지역 내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세율은 10~20%포인트에서 20~30%포인트로 인상되고, 종부세율은 0.6~3.2%에서 1.2~6.0%로 높아진다.
업계에선 다주택자들이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하반기에 대선 이슈가 부각되면서 개발 호재 발표와 규제 완화 논의가 본격화하면 아파트값이 다시 상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양도세 중과세 여파로 매물 잠김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개정된 세법에선 1년 미만 보유 주택에 대한 양도세율을 현행 40%에서 70%로 인상하고, 2년 미만 보유 주택의 양도세율은 현행 기본세율(6~42%)에서 60%로 높였다.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선 집을 가능한 한 오래 보유하고 거주하는 것이 유리한 셈이다.
또 다주택자들 사이에선 양도세를 비싸게 낼 바에야 증여하거나 버티겠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전국 아파트 증여 건수는 1만281건이다. 전월(6541건) 대비 57.1% 증가했다. 월간 증여 건수가 1만 건을 넘은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 만이다.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2019건으로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2000건을 넘었다. 강남의 경우 1년 전과 비교해 증여가 10배 가까이 늘었다.
◇다주택자 시세 수준 호가 고수···매수자 급매물에만 기웃
매수자들은 치솟은 집값에 부담을 느껴 매입에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서울 모든 아파트를 가격 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위치한 아파트의 가격)은 전달보다 214만원 오른 8억7687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면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에는 서울 아파트 절반 이상이 9억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택구입부담지수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매수를 주저하는 이유로 꼽힌다.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서울 내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 중위가격 주택을 구입할 때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낸 지수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서울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지난해 4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인 153.4를 기록했다.
지수 100이 월 소득의 25%를 원리금으로 상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은 원리금 상환으로 월 소득의 40% 이상을 지출하는 수준이다. 저금리 상황을 고려해도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아울러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가 과거 주택시장 침체기 진입 시점 이전인 2007~2008년 수준과 유사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매수자들은 저렴한 매물을 찾는 반면 매도 의향이 있는 다주택자들은 시세 수준의 호가를 고수하고 있어 거래 절벽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부동산거래현황을 살펴보면 지난달 아파트 거래는 2774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거래량은 1월 5777건을 기록한 이후 2월 3864건, 3월 3762건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1~4월 거래량은 작년 (2만2261건)과 비교하면 27.3% 줄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 완화 기대감에 내놓은 매물을 거둬들이는 다주택자들이 늘고 있다”며 “내놓더라도 시세 수준의 호가를 고수하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매수자는 급매물에만 관심을 나타내면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