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강매당하고 스스로 목숨 끊는 사태까지 벌어져···소비자 불신 심각 수준
완성차 업체 시장 진출은 정부 결정만 남았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
“대기업 진출하면 업체 다 죽는다는 말도 맞지 않아”

서울의 한 중고차시장(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중고차시장(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한 60대 가장의 죽음으로 중고차 시장의 조직적 사기수법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현대차 등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에 대한 요구도 거세지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망설이는 모습이다.

11일 충북경찰청은 허위 매물을 올린 후 다른 차를 비싸게 강매한 일당 26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고차 사이트에 싼 가격에 매물을 올린 후 정작 소비자가 찾아오면 계약서를 작성한 후 급발진 차량이라는 등 온갖 이유를 대며 계약철회를 유도했다. 이후 피해자가 계약철회를 하려하면 문신을 보여주는 등의 행위로 협박해 다른 차를 비싸게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는 한 60대 가장 A씨의 죽음으로 시작됐다. 충북 제천에 사는 A씨는 1톤 트럭을 비싼 값에 강매당한 후, 처지를 비관해 휴대폰에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충북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수사에 나섰고 결국 사기조직을 일망타진했다.

이번 조직범죄는 허위매물 등 중고차시장에 만연해 있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이미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상당히 추락해 있는 상태다.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20~60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9.9%가 혼탁하고 낙후된 시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와 더불어 응답자 56.1%가 완성차업체의 중고차시장 진입에 긍정적이라고 답했고 반대는 16.3%에 그쳤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교수 등 전문가 25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79.9%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시장이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혼탁해진 중고차 시장을 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현실은 소비자들의 생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고차 사업은 2019년 2월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제외됐다. 이후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고차 매매업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현대차 등 대기업이 진출의사를 밝혔지만 정부가 결정을 미루면서 사실상 답보 상태다.

전문가 및 소비자들이 현대차 등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믿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대기업이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허위매물 등 부조리 행태를 보일 가능성은 낮다는 점과 자정작용을 할 수 있도록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중고차 업계 및 대기업의 상생 방안을 위해 소통대표를 맡아 협의 과정에 관여했던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고차 시장에 현대차가 들어오는 것에 대한 업계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대기업 완성차업체의 점유율을 10%로 제한하는 안까지 제시를 했었는데, 결국 이마저도 무산됐다”며 “중고차 시장은 이 상태로는 개선이 안 되고 대기업이 들어와 견제 역할 해줘야 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기부가 결정만 내리면 되는 상황인데 뜨뜻미지근하게 시간을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고차 시장 대기업 진출 문제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정작 가장 중요한 소비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결국 소비자들이 직접 온라인 서명운동까지 벌이게 됐다. 자동차시민연합 등 시민단체 연합체는 지난달 12일 중고차 시장을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범시민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해당 서명운동은 시작된 지 채 한 달도 안 된 지난 9일 참여자가 1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중고차 시장의 주체인 소비자들은 대기업이 들어오면 피해보상 등을 더욱 수월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며 “어차피 소비자들도 가격비교 등을 하고 결정하는 것인데, 대기업이 진출한다고 중고차 업계가 다 죽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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