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아닌 제 3의 물건에 행해진 행위 성범죄 적용 어려워
“형사재판과 별개로 정신적 충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할수도”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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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한 공무원 박아무개씨(48)가 여자 후배 텀블러에 자신의 체액을 넣는 엽기적 행위를 해 처벌받은 사실이 알려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총 6차례나 이런 행각을 벌였다고 하는데요. 분명 성범죄적 성격이 짙어 보이는데 왜 성범죄가 아니라 재물손괴죄를 적용받은 것일까요?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존재하는 법으로는 박씨의 행위에 성범죄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강신업 변호사는 “강제추행, 강간 행위 등에 대한 성범죄는 신체 접촉을 통해 수치심을 느낄 경우에 적용할 수 있지만 텀블러와 같은 제 3의 물건에 대해선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제추행을 규정한 형법 제298조에 따르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피해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해도 사람신체가 아닌 텀블러에 행해진 행위에 대해선 성범죄임을 인정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법원은 재물손괴죄를 적용해 박씨를 처벌했습니다. 재물손괴죄는 타인의 재물, 즉 소유물을 손괴, 또는 은닉하는 방법으로 효용을 해하는 경우 적용할 수 있습니다. 박씨의 경우 텀블러에 몹쓸 행위를 함으로써 사실상 그 텀블러 사용을 할 수 없게끔 ‘효용’을 해쳤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박씨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는데요. 비록 성범죄 혐의는 적용하지 못했지만, 텀블러의 원래 가치를 생각해 봤을 땐 법원이 법 안에서 강력하게 처벌을 하려했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 법조계 해석입니다.

그래도 피해를 본 여자후배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 이번 형사재판과 별개로 민사소송도 가능하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강신업 변호사는 “텀블러 재물손괴죄 재판은 형법과 관련한 것이고, 이와 별도로 이런 행위로 정신적 충격을 준 부분에 대해 민사로 손해배상청구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습니다.

최근엔 이와 별도로 한밤중에 처음 보는 여성을 현관까지 따라간 남성에 대해 무죄판결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여성들을 위협하는 온갖 범죄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를 단죄하기 위해 법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통념상 누가 봐도 성범죄적 성격이 짙은 행위들에 대해선 새롭게 법을 마련하거나 현실에 맞게 손볼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법은 늘 진화해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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