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신종자본증권 최대 발행 규모 기록···신한, 글로벌 최저 금리 '맞불'
신용도 높아야 금리 낮추고 조달액 키울 수 있어···KB·신한 "내가 더 우량기업"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실적을 둘러싸고 벌이는 ‘리딩금융’ 전쟁이 ‘자본확충’으로 번지고 있다. 더 낮은 비용(금리)으로 최대한 많은 규모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KB금융이 올해 초 역대급 규모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자 신한금융도 글로벌 최저 수준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신한금융, 5억 달러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글로벌 최저 수준' 금리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은 최근 미화 5억 달러(약 5608억원) 규모의 외화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영구채로 만기는 없고 발행일로부터 5년 되는 해에 발생하는 중도상환옵션(콜옵션)이 포함된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8월 같은 규모로 후순위채로 발행하려했지만, 최근 발행 여건이 개선되면서 올해 3월 이사회에서 신종자본증권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외화 신종자본증권은 발행금리가 눈에 띈다. 최종 확정금리는 2.875%로, 글로벌 달러 시장에서 발행된 신종자본증권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수요조사에 발행 규모의 8배에 해당되는 39억달러의 주문이 몰리자, 신한금융은 최초 제시금리 대비 0.525%포인트(p)를 낮출 수 있었다.
이번 발행을 통해 손실흡수력을 측정하는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 중 총자본비율과 기본자본비율은 3월 말 대비 각각 0.22%p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자여력을 나타내는 이중레버리지비율도 2.43%p 개선된 112.96%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신한금융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서며 자금 조달 채널의 다양화에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 지난 2018년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5억 달러 규모로 외화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이후 4년 연속 외화 채권으로 자금을 끌어모았다. 이 과정에서 쌓은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이번 신종자본증권을 낮은 비용으로 발행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 신한금융의 설명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이번 발행으로 신한금융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재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를 벗어나 채권 인수 주체 및 발행 전략을 다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라며 “이번에 조달한 재원을 환경 보호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에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낮은 금리·많은 조달규모는 높은 신용도의 ‘징표’···KB-신한, 발행조건 둘러싼 경쟁↑
신종자본증권은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매우 길고, 채권처럼 매년 일정한 이자나 배당을 주는 금융상품을 말한다.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가졌다고 해서 하이브리드 증권, 코코 본드, 영구채로도 불린다. 신종자본증권은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 계산 시 기본자본(Tier1)으로 잡혀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들의 자기자본 확충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종자본증권이 자본으로 인정을 받는 이유는 발행 회사가 파산하게 되면 채무 변제 순위가 일반 회사채보다 후순위로 밀리는 특성 때문이다.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보통주와 함께 발행사의 손실흡수력을 키우는 방법인 이유다. 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을 떠안아야한다. 이에 신종자본증권은 일반 회사채보다 금리가 높게 발행된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금융지주가 신종자본증권을 최대한 낮은 금리로 조달 금액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용도가 높아야 한다. 시장과 평가기관으로부터 높은 수준의 이익창출 능력을 갖추고 있고 건전성 관리도 잘 되고 있어 파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질 때, 금융지주는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고 금리도 낮출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금융지주는 신종자본증권 발행할 때 발행규모 확대와 금리 인하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실적 1위에 오른 것 못지않게 그룹을 긍정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이에 올해도 KB와 신한은 당기순익 뿐만 아니라 자본확충도 누가 더 유리한 조건으로 많이 발행하는가를 두고 ‘자존심 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신종자본증권 발행의 포문을 연 곳은 KB금융이다. KB금융은 지난 2월 6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서 국내 최대 발행규모 기록을 작성했다. 수요예측 당시 1조1040억원의 물량이 몰리면서 발행규모를 3500억원에서 2500억원 증액했다.
수요가 크게 불어나자 발행금리도 낮출 수 있었다. 당시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중 가장 규모가 컸던 5년 콜옵션은 발행금리가 2.67%로 결정됐다. 지난해 마지막 발행인 10월에 5년 옵션 물량의 금리는 3.00%인 것을 고려하면 약 0.33%포인트(p) 하락한 것이다.
이에 뒤질세라 신한금융도 지난 3월 동일한 규모로 신종자본증권 발행했다. 신한금융은 당초 4000억원 규모로 발행하기로 했지만, 2000억원 늘렸다. 이로써 신한금융은 올해 신종자본증권으로 1조2000억원 가량의 자본을 늘렸다. 지난해는 KB금융이 푸르덴셜생명 인수를 위해 KB금융이 1조원 넘게 발행했지만, 올해는 신한금융이 더 규모를 늘리는 모양새다.
◇금융지주, 올해도 신종자본증권 발행 러시는 ‘진행형’···이자부담도 아직 크지 않아
KB, 신한을 포함한 주요 금융지주들은 지난해 신종자본증권 발행 규모를 크게 늘렸다. 코로나 충격으로 중소기업 대출 지원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본을 늘려야 했다. 이러한 필요와 함께 저금리 기조로 시중에 대규모 자금이 풀리면서 발행 조건도 크게 좋아진 점도 규모 확대의 원인이었다.
올해는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있지만 시중 자금 규모는 아직도 크기 때문에 신종자본증권 발행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것과 함께 금융지주가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발행 규모 확대를 이끄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 지적하고 있는 이자비용 문제도 아직 큰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는 대규모 신종자본증권 발행에도 이자비용으로 총 2111억원을 지출했다. 한 금융지주 당 500억원 남짓한 비용은 한 해 2조~3조원을 벌어들이는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큰 부담은 아니라는 평가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각 금융지주는 한 해 자본확충 규모와 신종자본증권 발행 일정 등에 대한 계획을 정하고 이를 이행하고 있다”라며 “올해도 발행 환경이 나쁘지 않은 만큼 꽤 많은 자금을 신종자본증권으로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