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첨단물류단지 개발 5년째 지지부진
하림·서울시, 용적률 두고 갈등 여전
지난달 30일 열린 토론회서 입장차 재확인
“용적률 풀면 여당서 특혜 의혹 제기할 수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양재 도심첨단물류단지 개발’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땅 소유주인 하림그룹과 인허가권자인 서울시는 용적률을 두고 여전히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재개될 것이란 전망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셈이다. 업계에선 최종 결정권자인 오 시장이 과거 ‘파이시티 특혜 의혹’을 의식해 몸을 사리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하림, 2016년 도시첨단물류단지 추진···‘R&D 혁신 거점’ 추진하는 서울시와 갈등
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하림의 양재동 도심첨단물류단지 개발은 5년째 삽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하림은 2016년 4월 서울 양재동 225 일대 옛 화물트럭터미널 부지를 4525억원에 매입했다. 당시 김홍국 하림 회장은 “지하에는 최첨단 물류센터를 조성하고 지상은 R&D과 컨벤션·호텔·공연장 등이 들어서는 복합물류단지로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정부도 같은 해 6월 해당 부지를 ‘도시첨단물류 복합개발 시범단지’로 선정하면서 하림 측 구상에 힘을 실어줬다.
갈등은 같은 해 8월 서울시가 양재·우면동 약 300만㎡(약 90만평) 일대를 ‘연구개발(R&D) 혁신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서면서 촉발됐다. 해당 부지는 정부와 서울시의 계획에 모두 포함됐다. 물류단지를 추진하는 하림과 연구시설을 추진하는 서울시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면서 수년간 갈등을 빚었다. 지지부진했던 사업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도시첨단물류단지 복합개발 방안에 동의하면서 다시 물꼬가 트이는 듯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 ‘물류단지 지정 및 절차에 관한 조례’를 제정·공포했고, 하림은 곧바로 투자의향서를 서울시에 제출했다.
◇용적률 놓고 대립 ‘서울시 400% vs 하림 800%’···‘오세훈 효과’ 기대했지만 입장차 여전
서울시는 박 전 시장이 사망한 이후 돌연 태도를 바꿨다. 교통난과 형평성 논리를 앞세워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는 하림이 서울시의 도시계획과 배치되는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유로 원점에서 재검토 할 것을 요구했다. 하림의 계획인 지하 7층·지상 70층 대규모 물류단지를 허용할 경우, 상습 교통정체 지역인 양재IC 구간의 교통난이 가중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큰 이견은 ‘용적률’에서 나타났다. 서울시는 도시계획상 부지 일대 용적률이 400%로 관리되고 있는 만큼 하림이 제시한 800%를 적용하는 것은 특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하림은 당시 정부와 국회가 첨단물류단지 조성을 위해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 만큼 이에 따라 단지를 개발하겠다는 입장이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이 부지는 상업 지역으로 지정돼 용적률이 최대 800%까지 허용될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양측은 여전히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초 업계에선 오 시장이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등 민간 개발에 대한 규제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멈췄던 개발이 재개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서울시의회가 주최한 ‘도시첨단물류단지의 협력적 개발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기만 하림산업 대표이사와 심재욱 서울시 도시계획국 시설계획과장 등 이해관계자들은 입장 차만 재확인했다.
◇과거 재임 시절 ‘파이시티 프로젝트’ 특혜 의혹···“정치적부담 적지 않을 것”
일각에선 정치적 부담감으로 인해 오 시장이 하림에 쉽게 손을 들어줄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해당 부지는 오 시장 재임 시절 ‘파이시티 프로젝트’의 특혜 의혹이 있었던 곳이다. 파이시티 프로젝트는 2006년 시행사 파이시티가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에 백화점과 쇼핑몰, 업무시설, 물류시설 등이 결합된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유통업무단지 조성을 추진했던 사업이다.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들의 반대에도 대규모 점포·업무시설·백화점 등을 들일 수 있도록 서울시가 용도변경을 해주면서 특혜 시비가 붙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이후 파이시티 관련 인허가 비리로 최측근이 구속되기도 했다. 오 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을 맡았던 강철원 비서실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강 비서실장은 이번 4·7 재보궐선거에서 선거 캠프를 이끈 오 시장의 최측근이다. 이 밖에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반대 입장이 완고한 상황에서 용적률을 풀어준다면, 여권에서 또다시 특혜 의혹을 들고 나올 수 있다”며 “정치적 부담감이 적지 않은 만큼 오 시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