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임기 3년 동안 문재인 정부 실패와 같은 과정 밟아
과거사 집착과 원칙없는 CEO징계 남발로 명분과 실리 모두 잃어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지난 2018년 5월 취임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임기가 이번 주 금요일(7일) 만료된다. 후임자는 아직 미정이라 김근익 수석부원장 직무대행체제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윤 원장은 현 문재인 정부 들어 유일하게 3년 임기를 채운 금융감독원장이다. 2017년 9월 임명됐던 최흥식 전 원장은 하나금융 사장 시절 하나은행 채용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반년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후임자는 김기식 전 의원은 정치자금 등 각종 추문에 휘말리면서 임명 보름만인 2018년 4월16일 물러났다.
앞선 두 사람이 임기를 채웠다면 어쩌면 ‘학자’ 윤석헌은 금융감독원장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윤 원장을 보면 이렇게 관운이 있었던 경우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윤 원장을 돌이켜보면 어떤 면에서는 문재인 정권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나타내는 ‘준비된’ 인사였다고 판단된다.
현 정권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적폐청산을 외치면서 과거사에 집착하다 허송세월을 보냈고 원칙과 일관성도 없이 정책을 추진하면서 모순적인 행동을 보여줬다. 조국 사태나 한명숙 복권 시도에서 보듯이 극렬지지자들에 편승해 사법부 판결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180석’이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중국, 북한에서나 통용될법한 가치관을 국민에게 강요했다.
입으로는 정의와 공정을 외치면서 ‘내로남불’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지지율을 의식해서 쇼에만 집착했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다는 진실이 드러나자 국민은 등을 돌렸다. 미래세대에 대한 체계적 준비를 하지 않고 당장의 이익에 집중하면서 출산율 급락과 건강보험재정 악화 등 향후 대한민국의 장기성장성에 대한 불안감이 급증했다.
윤 원장의 3년 역시 이와 비슷한 행보다. 그는 금융감독원장에 취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풀이’에 나서기 시작했다.
윤 원장의 최우선 순위는 10년 전에 벌어진 키코 사태였다. 키코 사태는 대법원판결까지 갔던 사안이지만 윤 원장은 대법원판결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윤 원장은 키코사태를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적폐’라고 규정했고 2019년 12월 키코사태 피해기업을 구제하는 내용을 담은 분쟁조정안을 내놓았다.
키코사태 당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법원판결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3권분립에 근간을 두고 있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인 10년이 지났던 사건에서 금융감독원이 대법원판결을 무시한 분쟁조정안을 제시했을 경우 이를 은행들이 이를 순순히 수용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해결책이었다.
이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및 라임,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판매와 관련해 은행권 및 증권사 CEO에 대한 중징계 과정에서 역시 무원칙과 모순을 잘 드러냈다.
윤 원장은 DLF사태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었다. 애초 피해자 구제가 목적이었다면 피해자 적극 구제시 금융사 CEO를 경징계하고 피해자 구제 미흡시 중징계를 하겠다는 원칙을 세워야 했다. 그래야 금융사들이 피해자 손실보상에 적극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DLF사태와 관련해 원금의 최대 80%를 보상하라는 어정쩡한 조정안을 내놓고 이를 수용한 우리금융 손태승 회장과 하나금융 함영주 부회장에게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를 통해 ‘금융감독원이 시키는 대로 피해자 보상을 해도 중징계는 원래대로 받는다’라는 사실을 금융업계에 공표해버린 셈이 됐다.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윤 원장의 키코 중재안을 유일하게 수용했던 은행이었기도 했다.
이후 이어진 금융감독원 제재심의 CEO 징계 결정에도 원칙과 일관성이 보이지 않으면서 금융감독원 징계에 대한 신뢰도는 급추락했다.
내부통제미흡이 징계 사유라면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에게는 문책경고 징계를 내리고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나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경징계에 그친 논리를 설명할 수 없다. 적극적 피해자 보상이 조 회장과 진 행장에 대한 징계 경감 근거라면 금융감독원 분조위 결정을 수용한 손태승 회장이나 함영주 부회장, 박정림 KB증권 대표를 중징계한 논리가 빈약해진다.
부실상품 판매가 중징계 사유라면 수많은 부실 사모펀드 중 라임과 옵티머스펀드에 한해서 징계하는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를 징계하면서 다른 옵티머스펀드 판매사 CEO를 징계하지 않는 것 역시 설명할 논리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손태승 회장은 금융감독원 뜻과 다르게 회장이랑 은행장이랑 겸직한 괘씸죄였고 문책경고 의결 이후 가처분 행정소송을 내고 승소해 괘씸죄가 가중됐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함영주 부회장 중징계 역시 뚜렷한 기준없이 이루어졌다는 분석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윤 원장이 물러나고 결국 모든 사태를 수습하는 것은 남은 사람들이 할 것이다. 윤 원장의 임기 3년 동안 금융사 CEO에 대한 중징계 남발이 향후 금융소비자보호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칼은 뽑지 않았을 때가 가장 무섭다. 윤 원장은 금융감독원장 기간 동안 CEO 중징계를 남발하면서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협상카드로서 위력을 실추시켰다.
지금도 많은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후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 CEO징계 카드를 꺼내든다 해도 이미 소송전을 경험해본 금융권이 이전처럼 두려워할지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윤 원장에 대해 역대급 ‘빌런’이었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