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중심 분석·높은 기준 손질 주장···공청회 열고 논의 가속화
전문가, 면제 기준 완화엔 공감대···예타 수행주체 변경엔 부정적

신공항 부지로 확정된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부산항신항. / 사진=연합뉴스
신공항 부지로 확정된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부산항신항.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예비타당성조사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경제성에 치우친 분석이나 높은 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문턱을 지나치게 낮추면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예타 관련 법안이 다수 올라와 있다. 최근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규모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국회가 검증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가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사업을 심사해 정부에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양 의원은 “국가균형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여타 제도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국회가 국가예산심사 권한을 충분히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예타 수행 주체를 기재부 장관이 아닌 각 중앙부처 장이 담당하도록 하는 법안을, 홍성국 민주당 의원은 사업 규모가 큰 사회간접자본(SOC)의 예타 면제 기준을 총 사업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올리는 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홍 의원은 “예타 도입 당시 설정한 면제 기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해 기준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타 제도가 약해진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과거 물가를 기준으로 보면 늘어난 게 아니”라며 “의견 수렴 과정에서 기준보다 큰 금액이더라도 여러 이유로 예타 면제가 돼 왔는데 그 부분들은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 유지되고 있기에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예타는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정부가 타당성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절차이다. 1999년 도입됐으며 총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 재정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이 대상이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 평가위원회는 경제성 평가와 함께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기술성 평가를 고려해 종합 평가를 하고 사업 실시 여부를 결정한다.  

예타는 국책사업의 무분별한 추진을 막고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여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비용편익 등 경제성 중심의 분석이라 지역균형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이런 지적은 최근 가덕도신공항 추진 과정에서 더욱 불거졌고 예타 면제가 들어간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예타 공청회에선 관련 전문가들이 현재 발의된 예타 법안들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이들은 예타 제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경직적인 부분을 손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규모 사업에 대한 예타 대상 조건을 상향할 필요성엔 공감했지만 예타 수행주체 변경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봤다. 

/ 표=이다인 디자이너
/ 표=이다인 디자이너

 

박현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은 “예타 조사대상 금액인 500억원이 1999년부터 변화가 없어서 예타 대상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사업부서 등 관련 주체들의 예타에 대한 불편한 시각 등 예타 제도 수행 환경의 현실을 감안해 예타 대상기준 금액의 상향조정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예타 수행 주체의 변경에 대해서는 “예타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변화”라며 “독립평가를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하는 예타의 존립 당위성을 저해한다”고 했다.

손의영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도로, 철도, 공항, 항만 등 대규모사업에 대한 예타 대상 조건을 상향하는 것은 선택과 집중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다”며 “다만 1000억원 미만 사업에 대한 집행부처의 자율성이 확대됨에 따라 부적합한 사업 수행에 따른 책무성도 점차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예산 담당부처가 예타를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위해 바람직하다”며 “거의 대부분 국가가 예산당부처가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며, 선진국도 우리 예타제도를 모범사례로 말하고 있다”고 언급, 예타 수행의 경험과 지식을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전수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예타관련 기준금액을 상향하는 방법보다는 우선적으로 예타면제사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예타로 인해 균형발전과 새로운 혁신과 관련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또 “사회적 합의와 국가적인 정책에 대해 예타 면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운영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예타에 참여하는 전문가 구성에 다양성을 두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청회에선 국회의 예타 결과 심사권에 대한 부분은 거론되지 않았다. 다만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의견은 엇갈리는 상황이다. 여권의 한 의원은 “이 문제는 예타 제도 전반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는 데 많은 비용에 대한 문제 검토를 의원들에게 인계하는 것은 괜찮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심사권을 국회로 가져가는 건 신중하게 봐야 한다”며 “예타제도가 흔들리는 이유 중 하나가 남발하는 개발공약을 정치권에서 뒷심을 발휘하면서 흐지부지 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이어 “권한과 책임이 함께 있는 독립적이고 상설화된 전문 기관에서 예타를 맡아야 하지만 현재 이 부분이 제대로 안돼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걸 국회로 가져가는 건 표심을 위한 선심성 개발 사업 밀어주기의 장치가 될 우려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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