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최대 1조5000억원대 추산···정부 건강보험 재정 의무 지원 비율 지키면 마련 가능
소규모 사업장 부담에 “두루누리 지원사업 건강보험 적용 필요”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코로나19를 계기로 아프면 소득을 보전하면서 쉴 수 있는 상병수당 도입 논의가 본격화됐다. 그러나 정부가 아직 본격 도입 시기를 밝히지 않은데다가 건강보험 재정 20% 비율도 지키지 않고 있어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상병수당은 업무상 외 질병 또는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기간 소득이나 임금을 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보전하는 급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공적 재원을 통해 상병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이스라엘, 스위스, 미국 4개국 뿐이다. 그러나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 나라는 직간접적으로 노동자의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스위스와 이스라엘은 기업의 재원으로 노동자가 유급병가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규제하고 있고 미국은 무급병가를 보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판뉴딜 종합계획의 고용·사회 안전망 강화 방안에 상병수당 도입 추진을 담았다. 올해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거쳐 내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상병수당 전면 도입 시기는 아직 내놓지 않았다.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전면 도입 시기를 밝히고 최대한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6일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차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는 상병수당과 유급휴가제를 최대한 빨리 도입해야 한다”며 “그러나 정부는 재원이 든다는 기재부의 반대로 전면 도입 시기조차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파도 출근해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집단감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 구로구 콜센터, 부천 물류센터 등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벌어진 사업장에서는 감염자가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근무를 계속했다.

정부는 재원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

상병수당 도입에 따른 연간 소요 재정은 최소 4520억원에서 최대 1조5387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8년 기준 건강보험 총지출액 66조원의 2.3% 수준이다.

자료=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문가들은 정부가 법적으로 명시된 건강보험 재정 20% 지원 의무를 지키면 상병수당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20%를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 국가는 해당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4%를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해야 한다. 또한 당해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6%를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해야 한다. 이렇게 총 20%를 정부는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법적 의무 지원 비율 20%를 지키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지원 비율은 16.4%, 박근혜 정부 15.4%, 문재인 정부 13.4%다. 작년 지원 비율은 14.1%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2019년 정부가 법적 의무 지원 비율에 따라 건강보험을 지원해야 할 금액은 11조5000억원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원한 금액은 7조8000억원에 그쳤다. 정부가 법적 의무 지원 비율을 지켰다면 3조7000억원의 재원이 추가될수 있다. 상병수당 재원이 최대 약 1조5000억으로 추산되는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법적 의무 지원 비율을 지켰을 경우 마련할 수 있다.

상병수당이 도입될 경우 급여 수준과 기간, 대기기간 설정도 관건이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상병 보장기간 역시 건강이 완전히 회복할 수 있는 기간까지 보장하도록 해야하며, 유급병가가 없는 지역가입자의 경우 별도의 대기기간을 3일 또는 7일 이내로 최대한 짧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정이 부담스러운 소규모 사업장을 위한 보완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재훈 위원은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건강보험 가입률이 낮은 상황을 고려해 현재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에만 적용되고 있는 보험료 지원사업인 두루누리 지원사업을 건강보험에도 적용해야한다”며 “대상 사업장 역시 현행 10인 미만에서 30인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