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소비자 보호·국민 재판청구권 확대에 필요”
경영계 “소송 급증 우려, 도입 반대”
정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함께 도입 추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 회원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3월 25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환경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 회원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3월 25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환경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소비자 보호 확대를 위한 집단소송법 발의가 임박한 가운데 국민 재판청구권 확대를 위해 도입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에 반해 경영계가 소송 급증 가능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해 귀추가 주목된다. 

법무부가 지난 9월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은 현재 법제처에서 심사 중이다. 기존 내용의 큰 틀을 유지한 채 조만간 발의될 예정이다.

5일 정부 관계자는 “법제처 심사가 끝나면 최대한 빨리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다. 집단소송법 제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은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며 “심사 과정에서 입법예고안의 큰 틀은 유지될 것이다. 일부 내용의 경우 입법 예고 과정에서 수렴한 각 계의 의견에 대해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집단소송제도는 피해를 입은 소비자 중 일부가 제기한 소송으로 모든 피해자가 함께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5년 증권 분야에 한정돼 도입된 것을 전 분야에 확대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발표한 집단소송법 제정안 입법예고안의 주요 내용은 소송 전 증거조사제 도입, 대표 당사자와 원고측 소송 대리인의 소송 허가 요건 완화, 소멸 시효가 남은 경우 시행 이전 발생한 사항도 적용 등이다.

이미지=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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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는 집단소송법 발의를 앞두고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관계자는 “집단소송제가 도입될 경우 소송 남용과 이에 따른 소송 비용 증가로 기업 환경이 어려워 질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자체를 반대한다. 최소한 소송 남소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 법안 도입 시 최대 10조원의 소송비용이 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에서는 집단소송제 도입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변호사)은 “집단소송법이 도입되면 흩어져 있던 다수의 소비자 피해가 소송으로 제기될 수 있다. 이 경우 기업들이 지금처럼 소비자 피해를 간과하고 영업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BMW는 한국에서 화재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도 리콜을 미루다 정부의 조사가 진행돼서야 리콜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에서 차량 결함이 발생했던 경우 즉각 리콜에 나섰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도 마찬가지다. 옥시는 인체에 유해성 논란이 있는 PHMG 물질이 들어간 생활용품을 유럽에서 팔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했다. 한국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지 않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소비자 보호와 국민들의 재판청구권 확대,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집단소송법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김 위원은 남소 가능성에 대해 “법원이 소송의 요건을 엄격히 심사하는 과정을 거쳐야 소송이 진행된다. 경영계에서 우려하는 기획 소송 등 남소는 이 과정에서 걸러진다”고 했다.

시민사회에는 정부 입법예고안에 담긴 소송 전 증거조사(한국형 증거개시제)도 함께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이를 증명할 증거가 없다. 그 증거는 기업이 가지고 있기에 소송에서 대등하지 않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소송 전 증거조사 도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정부의 집단소송제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 인지대 상한액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지대 부담으로 인한 집단소송 활용의 장애를 없애야 한다는 것. 입법예고안의 인지액 상한은 5000만원이다.

반면 전경련 관계자는 “소송 전 증거조사 적용 대상이 광범위해 기업 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다. 한국형 증거개시제는 미국보다 기업에 불리한 형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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