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기어 변경 없으면 주행 불가” vs “컴퓨터가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 오류”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23년 경력의 운전자가 운전한 볼보사의 차량에서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해 민사소송이 제기된 가운데, 제조사와 운전자는 ‘기계식 변속기’의 특성을 놓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운전자가 의지를 갖고 기어를 변경해야 주행이 가능하다고 제조사가 반박하자, 운전자 측은 메인컴퓨터와 인공지능(AI)이 차량을 제어하고 있다고 재반박했다.
볼보 S60 T5 차량 운전자 A씨가 설계 결함에 따른 급발진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자 볼보코리아 측은 “해당 모델 변속기는 기계식 기어레버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운전자의 의지에 따라 변속을 하지 않을 경우 주행이 불가하다”는 반박 입장을 1일 밝혔다.
정차돼 있던 차량이 움직이려면 변속레버 위치가 P에서 D로 바뀌어야 하고, 이는 전적으로 운전자의 변속레버 변경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원고인 A씨 측은 이 차량이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을 탑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메인컴퓨터가 운전자보다 상위의 위치에서 차량을 제어하고 있고, 컴퓨터 오류로 급발진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A씨의 대리인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는 “ADAS 기능이 장착된 차량의 제어는 운전자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며 “차량의 작동을 전체적으로 총괄적으로 제어하고 두뇌 역할을 하는 차량의 메인컴퓨터와 이에 내재된 AI(인공지능, 알고리즘, 소프트웨어)가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두뇌 역할을 하는 차량의 메인컴퓨터가 디지털 신호를 보내 제동을 하고, 운전자가 핸들을 돌리지 않아도 차량의 메인컴퓨터가 디지털 신호를 보내 조향을 하는 사실에서 운전자보다 차량의 메인컴퓨터가 상위의 위치에서 차량을 제어하고 있다”며 “두뇌 역할을 하는 메인컴퓨터에서 내재적 결함이 있어 순간적으로 그 기능이 마비되거나 혼란이 초래되면, 메인컴퓨터가 차량을 운전자의 의도나 작동이 없어도 자기 스스로 디지털 신호를 발생시켜 엉뚱하게 차량을 작동시키는 오류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볼보코리아 측은 “ADAS 기능은 자율주행 기술이 아닌 특정한 조건에서 작동하는 운전자 지원 기술”이라고 재반박했다. ADAS 기능이 항상 차량을 제어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조건부로 운전자를 ‘지원’한다는 설명이다. 볼보코리아는 또 “이번 상황에서 운전자가 가속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 당시 상황이 해당 기술이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인지도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차량의 지배력 관련 쟁점 외에도 브레이크 등 작동과 관련한 논쟁도 예상된다. 이 사건 차량은 정차부터 출발, 주행, 충돌 시점까지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제조사의 급발진 의혹 사건에서는 브레이크 등이 점등된 상황에서 차량이 질주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반대로 브레이크 등 미작동을 엑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하는 ‘운전 미숙’의 결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2007년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일어난 캠리 승용차의 급발진 사건 소송(운전자 이름을 따 ‘북아웃 소송’이라고 불림)에서 소프트웨어 컨설팅업체 바그룹(Barr Group)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도 시스템은 가속페달을 밟는 것으로 오해해 급발진이 지속된다”는 취지의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의 교수이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필립 쿱만(Philip Koopman) 역시 소프트웨어 오류가 급발진을 야기하고, 브레이크 페달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