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앞두고 주식 비중 늘리기로 했다는 비판 피하기 위해 결정 미룬 것 아니냐 의혹
갑작스런 투자 비중 변화 판단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와 명분 있어야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국민연금 주식투자와 관련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들리고 있다. 바로 ‘재보선’이다.

내용은 이렇다. 최근까지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비중 한도를 낮춰왔다. 쉽게 말하면 국내 기업 주식을 팔아왔다. 지침대로 정해놨던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한 행보였는데 이내 개미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다. 개미들 입장에선 주가에 영향을 미치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늘리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지만 다음 달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사실상 재보선 이후로 결정을 미룬 것이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의 이 같은 결정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선을 고려한 것이라고 의심한다. 선거를 앞두고 주식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결정을 미룬 것 아니냐는 것이다. 어쨌든 결정을 미루면서 국민연금은 재보선 논란에 휩싸이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주식비중 늘리기 결정을 미룬 것이 반드시 재보선 때문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 국민연금도 이런 논란이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보면 애초에 이 논란의 첫 단추는 국민연금이 자초한 면이 있다. 목표대로 국내 주식 비중을 줄여가다가 갑자기 다시 확대하는 카드를 만지작댔던 것 자체가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

국민연금은 내부에서 정한 목표 비중에 따라 국내외 주식 및 채권 등의 포트폴리오를 결정한다. 국민연금이 각 부문투자 비중을 결정할 때엔 그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주식도사마냥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리적 의견을 도출해 낸 결과로 판단한다. 해당 기금 자체가 국민들의 소중한 노후자금이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처럼 마음대로 투자할 수 없다.

그렇게 고민해서 결정한 투자 비중을 왜 갑자기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는지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다시 주식비중을 늘리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모두가 납득할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

특히 개미투자자 원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는데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그 돈이 개미 돈이 아니라 국민 돈이라는 명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원칙이 외부 눈치를 보다 흔들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공식 절차와 제도에 따라 어떤 것을 정했다면, 이해관계자 반발이 있더라도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그대로 가야한다. 또 정부는 그런 결정을 내린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을 존중하고 보호해줘야 한다. 그게 법치국가의 원칙이고 기본이다.

결국 어느 조직이든 원칙을 끝까지 고수한 공직자가 훗날 당당하게 살고 탈이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법칙이다. 국민연금 주식 비중 문제는 다음 달 기금위 회의에서 결정이 내려진다. 비중을 늘리든 그대로 유지하든 그건 기금위가 알아서 하면 된다. 다만 훗날에도 당당하게 ‘원칙대로 의견을 냈었다’는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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