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움직일지는 여전히 의문이나 SK이노 ‘거부권 유치’ 총력
정치·외교적 부담에도 거부권 행사 하면···LG, SK와 ‘격차유지’ 실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합당한 배상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배터리 영업기밀 침해소송에서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에 패한 SK이노베이션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추후 전개될 협상에서 “양보는 없을 것”이란 취지로 풀이된다.

ITC 최종판결에 대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마감 시한인 내달 10일(현지시간) 전후로 양사 협상도 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을 경우에 국한된 예측이다. 만약 거부권이 행사되면 양사 분쟁도 새로운 분수령을 맞게 된다. 이 경우 LG 배터리 사업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25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SK는 거부권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이 미국을 방문했다. 건설 중인 조지아주 SK 배터리공장에서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거부권 필요성을 역설했다.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김 의장은 미국 관료사회와 친숙하고 다양한 협상을 이끌어 낸 전력이 있다.

거부권 마감시한까지 김 의장은 워싱턴DC로 자리를 옮겨 중심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유치에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김 의장의 이 같은 움직임과 별개로 샐리 에이츠 전 미국 법무부 부장관을 사업고문으로 위촉하며 다방면으로 거부권 유치 움직임을 이어가겠다는 심산이다. 지난 1월에는 빌 클린턴 및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환경관련 자문역을 지낸 캐롤 브라우너 변호사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조지아주 의회도 힘을 보탰다. LG·SK 합의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당초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촉구하는 내용이었으나, 민주당 요구에 따라 대상이 LG·SK로 수정됐다. 표면적으로 한 걸음 물러난 것으로 비춰지지만, 해당 결의안이 SK의 미국 배터리사업이 계획대로 이행돼야 한다는 메시지가 함의된 만큼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압박용으로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의 이 같은 노력이 실제 바이든 대통령을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후보시절부터 강조해 온 친환경·전기차 공약을 이행하는 데 미국 최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립 중인 SK의 사업이 큰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하다. 다만, 지적재산권을 강조하며 무역분쟁을 치르는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쉬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이는 LG에너지솔루션에도 사업적 부담요인으로 떠오를 것이란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단순히 양사가 지난 2년여 동안 막대한 소송비용을 쏟아 부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사업적 상황과 맞닿아있다. 국내외에서 LG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4월 LG 배터리가 장착된 르노 ‘조에(ZEO)’가 리콜 조치됐으며, 올 초에는 작년 5~6월 제조된 △폭스바겐 ‘e-UP’ △스코다 ‘Citigo’ △시아트 ‘E-Mii’ 등에도 리콜 명령이 떨어졌다. 화재위험성이 이유였다. 지난달 리콜이 결정된 현대자동차 ‘코나EV’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복수의 브랜드, 복수의 차종에서 화재위험성이 지목받았다.

 

SK 배터리 사업의 역점기지 중 한 곳인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셀 공장 부지.  /사진=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셀 공장 부지. /사진=SK이노베이션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와 7:3의 리콜비용 분담에 합의했다. 앞선 리콜과 관련해서도 비용지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40% 안팎을 차지한다. 금전적으로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난해 코타EV 연속화재 논란 당시 LG 측 발언을 문제 삼으며 “고객사의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해석하기도 했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자사의 배터리 장착 차량들 중 유독 코타EV에서만 화재가 발생한다”며 배터리가 화재원인으로 지목받는 것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이 시기 유럽에서 LG 배터리 리콜이 실시됐다. 이와 관련해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유럽에서의 조치는 배터리 모듈 제작 중 외관손상이 발생한 일부에 선제적으로 조치한 것”이라며 코나EV 화재와는 관련성이 전무하며 고객사 신뢰도와도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LG 배터리 이미지가 실추되면 이는 곧 SK 배터리에 반사이익으로 작용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원통형과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한다. 테슬라에 납품하는 배터리가 원통형이다. 전기차 판매 1위 업체인 만큼 현재로선 LG의 주된 수익모델이지만, 범용성은 파우치가 높다. 대부분완성차 업체들이 원통형보단 파우치형을 선호한다. 

SK이노베이션은 파우치형만을 제작한다. 테슬라를 제외한 LG에너지솔루션 고객사 중 상당수가 SK이노베이션과도 거래한다. LG에너지솔루션을 둘러싼 논란으로 촉발된 반사이익이 집중될 수 있는 업체가 SK이노베이션인 셈이다. 게다가 글로벌 완성차 1위 폭스바겐이 파우치형이 아닌 각형 중심의 배터리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해당 시장을 둘러싼 두 회사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요량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배터리시장을 보면 중국의 CATL과 LG에너지솔루션이 확고한 2강을 유지 중이다”면서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빅3’ 안착을 목표로 폭넓은 생산시설 투자를 이어오고 있으며, LG가 주력하는 파우치형 중심의 생산을 이어오고 있는 만큼 잠재적인 LG의 경쟁사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이어 “ITC 판결로 SK는 LG에 막대한 합의금을 지불하거나, 미국사업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이 실행되면 SK는 미국 배터리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하게 되지만, LG 입장에선 잠재적 경쟁사와 격차를 유지할 기회를 날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뼈아플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한편, 내달 10일까지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ITC 최종판결은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한다. ITC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등에 향후 10년 간 미국 수입·유통 금지명령을 내렸다. 포드·폭스바겐 납품물량에 대해선 각각 2·4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이와 별개로 진행 중인 배터리 분리막 특허 침해소송과 관련된 ITC 예비판결은 내달 2일 나온다. 최종판결은 그로부터 4개월 뒤인 8월 2일이다. LG는 SK가 분리막 관련 미국특허 3건, 양극재 관련 미국특허 1건을 침해했다고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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