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단협 장기화에 ‘공멸’ 우려···노사, 근무체계 두고 입장차 재확인
사측 “경영악화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노조 “노동자에 책임 전가·희생 강요”
순환휴업자 선정 ‘공정성 결여’ 지적도···노사정협의체 구성 등 필요성 제기
[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르노삼성자동차의 노사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실적 부진 상황도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며 노사의 공멸(共滅)이 우려되고 있다.
23일 도미닉 시뇨라 르노삼성 사장은 부산공장에서 박종규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노조관계자들과 면담을 가졌다. 이날 면담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진행됐지만, 노사는 서로의 입장차만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국내 완성차 기업 중 유일하게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을 매듭 짓지 못했고, 올해 들어서도 ‘강대강’ 대치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사측은 임단협 과정에서 장기 휴업을 단행했고, 올해에는 자체 회생 프로그램인 ‘서바이벌 플랜’도 가동하며 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지난달 약 500명의 직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 16일부터는 부산공장 근무체제를 주야 2교대 근무(주간조 오전 7시~오후 3시45분·야간조 오후 3시45분~밤 12시30분, 시간당 생산대수 45대)에서 주간 1개조 근무(시간당 생산대수 60대)로 전환했다. 근무체계 변경에 따라 일부 인력은 순환 휴업(1차 순환 휴업 대상자 272명)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측은 판매 부진에 따라 경영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근무체계 변경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르노삼성의 1월 판매량은 6152대로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했고, 지난달에도 7344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지난해의 생산대수는 위탁생산(닛산 로그) 종료·내수시장 침체 등 영향으로 11만2171대로 전년 대비 31.5% 감소했고, 이에 르노삼성은 올해 연간 생산목표를 15만7000대에서 10만대로 약 40% 낮춰 잡았다.
이에 도미닉 시뇨라 사장은 최근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실적 개선을 위해 구조조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며 “부진 속에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비 지출은 변동이 없어, 지난 한 해 보유한 현금 2000억원이 소진됐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말부터 유럽 수출을 시작한 XM3의 유럽 시장 수요가 회복되지 않고 있고, 부산공장 제조원가는 스페인 등 국가들의 2배에 달하는 등 경쟁력도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용절감을 위한 구조조정·근무체계 변경 등은 필수적이라는 것이 사측의 논리다.
이와 같은 사측의 주장에 노조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경영진의 무능에 따른 실적 악화를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또 근무체계 변경 등의 결정도 사측이 일방적으로 진행했고, 순환휴업자 선정기준에 공정성도 결여됐다고 지적한다.
노조는 “부산공장 영업이익률 평균은 르노그룹의 2023년 목표치의 2배, 2025년까지 그룹 목표치보다 상회하고 있다”며 “수년간 엄청난 수익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단 한 번의 적자로 인해 직원을 사지로 모는 것은 직원들을 단순 소모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르노삼성 경영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도 박종규 르노삼성차 노조위원장은 “(르노삼성은) 7년간 영업이익 1조7000억원을 냈지만 지난해 적자가 나면서 희망퇴직으로 500명이 회사를 떠났고, 회사는 추가로 1교대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르노삼성은 최근 4년간 막대한 영업이익을 거뒀음에도 지난해 한 번의 적자를 명분으로 노동자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순환휴업자 선정도 마구잡이로 진행했고, 이에 따라 정규직 생산인력의 공백이 생기는 부분을 비정규직 계약직 인력으로 채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조는 2교대(시간당 생산대수 40대)로 근무체계를 변경하고, 비가동일 발생 시 근로자의 연차, 사측의 유급휴무일을 번갈아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조의 요구를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노조는 지난 12일부터 확대 간부 전원이 8시간 지명파업을 시작했고, 지난 16일부터 부산시청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한 상황이다.
노조는 노사대화 상황에 따라 부분파업·전면파업 등으로 수위를 높여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노조는 지난달 쟁의투표를 통해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르노삼성 노사갈등이 더 장기화될 경우 최악의 상황을 도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장 XM3 물량을 유럽 공장에 뺏길 가능성이 높고, 실적이 더욱 악화돼 결국 투자보류·철수 등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산공장은 부산 지역 경제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투자보류·철수 등이 진행될 경우 지역 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노사정협의체를 구성해 정부·지자체 등이 협상의 중재자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