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지주사전환 후 정몽준·기선 오너家 실익제고 위한 다양한 탈법 자행”
현대重 “노조의 지적 근거 없어”···중대재해법·대우조선 등 갈등거리 산재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현대중공업 노사의 반목 수위가 심화될 조짐이다. 노조가 총수일가 지배력 확보 과정에서 탈법행위 등 복수의 비위행위가 있다고 주장하며 적극적인 대응을 예고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입장에선 안정적인 승계를 위해 ‘노사화합’이 새로운 과제가 될 전망이다.
23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빌딩에서 ‘탈법적 재벌승계, 사익편취 경영방식을 폭로한다’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대빌딩은 현대자동차그룹 소유로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등이 자리했다. 과거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가 위치했으며, 지주사설립 등 분사과정을 거쳐 탄생한 현대중공업지주·한국조선해양 등의 본사가 자리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지주가 정점에 위치했다. 산하에 조선사업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오일뱅크 △현대글로벌서비스 △현대건설기계 등 사업회사가 자리했다. 2019년 5월 당시 현대중공업이 존속법인 한국조선해양과 신설법인(사업회사) 현대중공업으로 물적분할됐다. 한국조선해양은 신설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을 거느리고 있다. 추후 결합심사가 승인될 경우 대우조선해양도 한국조선해양 계열사로 편입된다.
노조는 기존 현대중공업이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 등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정 부사장의 승계를 위한 탈법행위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무리하게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고, 핵심계열사들을 무리하게 지주사로 편입시켰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지주사 외 계열사들 실익이 감소했으며,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등 오너일가의 승계만을 위한 회사정책으로 다수가 피해를 입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조가 문제 삼거나 의혹을 제기한 항목은 크게 네 가지다. △현대중공업지주 설립과정서 과도한 대주주 의결권 증폭 △오너일가 실익을 위한 지주사의 무리한 현금배당 △현대오일뱅크 지주사 편입 후 상장추진에 따른 오너가에 편중된 실익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자랑하는 현대글로벌서비스 지분을 매입한 사모펀드 KKR의 정체 등이다.
현대중공업지부 조경근 지부장은 “정몽준 대주주는 2017년 당시 현대중공업 지분을 매각해 지주사 주식을 매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분율이 10.15%에서 25.8%로 확대됐다”면서 “대주주 일가 지분이 확대된 후 현대중공업지주는 고액의 현금배당을 지속했고, 지난해의 경우 5971억원의 영업손실을 나타내고 매출이 29% 감소했음에도 배당을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오일뱅크가 지주사 편입되기 이전, 조선경기가 극심하게 악화됐을 당시 상장을 추진했더라면 그룹의 현금흐름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면서 “현대오일뱅크가 현대중공업지주 산하로 편입된 직후 5800억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하는 등 지주사 수익을 높여 오너가의 실익을 높이기 위한 조치에 불과하다”고 힐난했다. 이와 더불어 안정적 실익이 기대되는 현대글로벌서비스 지분 38%를 매입한 KKR펀드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노조는 “향후에도 현대중공업지주는 주식가치 교환 및 현금배당 등을 통해 수익을 거두고, 한국조선해양은 브랜드수익 및 연구결과 판매 등을 통해 자회사로부터 수익을 확보할 것”이라면서 “회사에 쓰여야 할 금전적 역량이 총수일가 사익을 위해 활용되면서도 회사는 재정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2019년부터 노사 단체교섭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당 폭로 및 주장과 관련해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주사 설립은 99% 이상 주주 찬성을 통해 결의됐다”면서 “지주사 전환 및 대주주 주식취득, 계열사 편입 등 기타 사업적인 사안들도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또한 “노조가 의구심을 표한 KKR은 미국 최대 사모펀드(PEF) 운영사다”고 설명했다. 이날 노조의 주장이 전체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공방이 지속되는 등 현대중공업 노사관계가 점차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며 우려하는 모습이다. 양측은 지난달에도 2년 만에 나온 임단협 잠정안이 부결되면서 관계회복에 유독 더딘 모습을 띠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2019년 5월 한국조선해양 출범을 위한 임시주총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당시 노조는 법인분할에 반대하며 주총장인 한마음회관 안팎을 점거하고 농성에 나섰으나, 회사는 주총장 긴급 변경 카드로 안건을 가결시켰다.
관계회복이 요원한 가운데,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될 예정이어서 이 같은 평행선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잇따른 산재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으로 해당 법 발효에 따른 부담이 큰 기업으로 분류된다. 또한 노조가 지속적으로 반대의사를 피력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결합심사 결과가 금년 중 도출될 것이 유력시됨에 따라 일촉즉발의 반목으로 확대될 가능성 역시 농후한 상태다.
자연스레 차기 총수로 평가되는 정 부사장의 승계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정적 승계를 위해 노사관계 개선이란 과제가 부여된 셈이다. 그간 현대중공업 측은 “정해진게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정 부사장의 사내 영향력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이 전문경영인 체제서 총수경영 체제로의 전환될 것이란 관측이 지대하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영업 대표 등을 겸직 중이다. 2009년 현대중공업 대리로 입사해 휴직 후 유학길에 올랐다가 크레디트스위스·보스턴컨설팅그룹 등에서 근무했다. 2013년 부장으로 복귀한 뒤 2014년 상무, 2015년 전무, 2017년 부사장 등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