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한국투자·NH투자·KB증권 등 상품 출시 및 가입 이벤트 활발
예탁결제원, 금융사간 계좌 이동 서비스 도입 예정···은행권 “신탁형·일임형에 집중”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시장의 판도 변화에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부진을 거듭하던 ISA 시장이 올해부터 적용되는 제도 개선의 효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증권사들이 ‘중개형 ISA’ 신상품을 내세워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직접 국내 주식을 운용할 수 있는 중개형 ISA는 주식 시장 열풍, 계좌 이동 시스템 도입 등과 맞물려 대규모 고객 이동을 유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ISA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은행권은 제도상의 한계, 추가 비용 등을 감안해 중개형 ISA 신규 고객 확보 보다는 현상 유지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도 개선으로 ISA 시장 성장세···1월 한 달 가입 고객 4만명 증가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앞다퉈 중개형 ISA 상품을 출시하고 각종 가입 이벤트를 진행하며 신규 고객 확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중개형 ISA를 출시하며 사전 이벤트를 진행했던 삼성증권은 내달 30일까지 추가 이벤트를 진행하기로 했으며 NH투자증권도 지난 15일 중개형 ISA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1년간 국내 주식거래 수수료 무료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도 이달 초 중개형 ISA 상품을 출시하고 다이슨 청소기, 에어샤워 등 경품 증정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KB증권도 지난 12일 중개형 ISA를 새롭게 선보이면서 ‘공모주 청약 우대 혜택 이벤트’와 ‘금융상품쿠폰 제공 이벤트’ 등을 공개했다.
증권사들의 이러한 공격적인 영업은 정부의 세제개편 이후 고객들로부터 재조명받고 있는 ISA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ISA는 지난 2016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제도로 예·적금, 상장지수펀드(ETF), 리츠(REITS), 파생결합증권(ELS)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담아 투자할 수 있어 일명 ‘만능통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한계점들로 인해 그동안 금융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이에 정부는 ISA 활성화를 위해 올해부터 ISA의 단점들로 지적됐던 가입조건, 의무가입 기간 등을 개선하기로 했으며 국내 상장 주식도 ISA 투자 대상에 포함시켰다.
제도 개선은 곧장 ISA 가입자 증가로 이어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93만9102명이었던 총 가입자 수는 올해 1월 말 197만9167명으로 약 4만명(2.07%) 늘어났다. 가입 금액 역시 같은 기간 6조4029억원에서 6조8307억원으로 4278억원(6.68%) 증가했다.
증권사들의 중개형 ISA 출시는 이러한 상승세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중개형 ISA는 제도 개선 이후 새롭게 도입된 상품 유형으로 기존 ‘일임형 ISA’, ‘신탁형 ISA’와 달리 고객이 직접 개별 종목 매매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존 증권 계좌와 동일하게 직접 투자를 하면서 ISA의 비과세 혜택, 손익 통산 혜택 등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삼성증권의 경우 출시 1주일만에 가입자 2만5000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오는 22일로 예정된 예탁결제원의 ISA 계좌 이동 시스템 오픈도 ISA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시스템이 오픈되면 기존에 타사에서 신탁형 ISA나 일임형 ISA를 보유하고 있던 고객들을 중개형 ISA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은행과 증권사 간의 이동도 가능해 전 금융권에 걸친 대규모 고객 이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은행권 기존 고객, 안정 추구 성향으로 분석···“고객 이탈 크지 않을 것”
현재 ISA 가입 고객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은행권은 증권사들의 중개형 ISA 러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제도 상의 한계로 인해 중개형 ISA 출시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신상품 출시에 따른 수익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평가다. 은행은 이미 주식 매매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증권사와 달리 중개형 ISA를 출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거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은행은 자본시장법 상의 위탁매매업 라이선스가 없기 때문에 증권사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추가 비용 지불도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안정성을 중시하는 기존 고객들의 특성상 증권사로의 이동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에도 일임형 ISA의 경우 일반적으로 증권사의 모델포트폴리오(MP)가 은행들의 MP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은 안정적인 은행을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투협에 따르면 최고위험으로 분류된 MP 중 가장 높은 수익률(3년 기준)을 기록한 것은 키움증권의 ‘키움기본투자형(초고위험)’이며 대신증권의 ‘대신 ISA 글로벌형 플러스 초고위험랩’이 그 뒤를 이었다. 각각 47.55%, 38.6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높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전체 투자금(6조8307억원) 대비 증권사 투자금(8381억원)의 비중은 12.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의 투자금은 5조9923억원으로 전체의 87.73%를 차지하고 있다. 가입자 수 비중 역시 은행은 91.95%, 증권사는 8.02%를 기록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중개형 ISA를 출시하지 않으면 개별 투자를 희망하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데는 일정 부분 한계가 있겠지만 기존 고객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신탁형 ISA, 일임형 ISA 등에서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의 주식 투자 열풍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지 미지수”라며 “안정성이 추구되는 시기가 되면 오히려 증권사에서 은행으로 고객이 이동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