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양호·사회적 가치도 강점···과거 한수원 ‘원전 마피아’ 사태에도 보통 등급 사례
“평가위원, 국민 여론 의식할 것···윤리경영 항목 강화론 한계,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필요”

/ 이미지=김은실 디자이너,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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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일부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거센 질타를 받는 가운데 오는 6월 발표하는 2020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4년 연속 우수 등급을 받을 지 주목되는 가운데 비계량 평가가 변수란 예상이 나온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워크숍을 갖고 본격적인 공공기관 경영평가 작업에 돌입했다. 평가단은 다음달 23일까지 비대면 실사를 마무리한 뒤 회의를 거쳐 5월 27일까지 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결과는 6월 말에 발표할 예정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LH 직원 투기 관련 대책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윤리경영과 공정경영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는 등 더욱 엄정하게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2020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기존 틀 내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공공정책총괄과 관계자는 “올해 공공기관 평가 기준은 작년 연말에 이미 확정됐고 각 기관도 이에 따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정해진 지표에 따라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영평가 지표는 매년 개정하는 데 이번 LH 사태와 같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일이 일어나면 윤리경영의 평가 기준을 높이는 등의 변경이 이뤄지는 것은 가능하다”며 “내년도 평가 지표를 검토할 때 이번 사안을 고려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LH도 본격적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준비에 들어갔다. LH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통보가 온 즉시 준비에 착수했으며 오늘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며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에 해당하는 부서에서 각각 자료를 취합하고 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경영관리, 주요 사업을 중심으로 혁신성장 부분에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평가한다. LH는 2017년 이후 최근 3년간 우수(A) 등급을 받았다. 2019년 평가에서는 윤리경영 항목에서 미흡(D) 등급을 받았지만 실적 등 다른 항목의 점수가 높았다. 이에 따라 임원 1인당 평균 7705만원, 직원은 인당 992만원의 성과급이 지급됐다. 

LH는 2020년 실적도 양호하다. 지난해 반기 영업이익은 2조8억원으로 전년 9918억원의 두 배가 넘었다. 지난해 반기 당기순이익도 1조4340억원으로 전년 8988억원보다 60%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결산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반기 실적이 워낙 좋아 전년 대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더 나아질 것이 유력하다.

/ 표=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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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는 평가에서 내세울 만한 업무 내용들도 많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영평가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비중을 높였다. LH는 취약계층 지원과 사회적 약자 창업공간 지원 등의 주거복지사업과 공공주택사업 등 사회적 가치에 부합한 업무가 주요 사업이다. 또 스마트시티 등 융복합 도시조성 사업은 혁신 성장 측면에서 어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LH가 직원 투기 사태로 전 국민적인 질타를 받고 있지만 올해도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A 공공기관 관계자는 “LH가 지난해 실적이 전년보다 좋았다면 사회적 물의를 빚었더라도 평가 항목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도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과거 초대형 비리가 드러나 온 나라가 들끓었지만 경영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한 사례도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13년 임직원과 납품업체, 검증업체, 정부 고위공무원이 연루된 원전 비리가 드러나 전 국민적인 지탄의 대상이 됐다. 당시 공공기관 업계 내에서는 한수원이 경영평가에서 최하 등급을 받는 것은 정해진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실제 한수원의 2013년 경영평가 결과는 보통(C) 등급이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계량 평가와 비계량 평가로 이뤄져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중 비계량 평가를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A 공공기관 관계자는 “평가위원이 큰 문제가 없는 공기업의 경우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는 평가항목도 LH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B 공기업 관계자는 “평가 위원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는 기업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며 “외형상 좋은 성과를 거뒀다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돼 국민들로부터 비난받을 일이 있으면 평가 위원들이 이를 감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재부 평가분석과 관계자는 “비계량 평가는 평가위원들의 견해가 많이 들어가는 구조”라며 “계량 평가는 산식으로 딱 떨어져서 우리가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지만 비계량 평가는 주관적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가 이번 LH 일부 직원들의 투기 의혹과 같은 비위를 반영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공공기관 평가위원에 포함된 한 학계 전문가는 “LH 직원 투기와 같은 걸 경영평가에서 반영하는 방법은 윤리경영 비중 강화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게 적절한지는 의문”이라며 “경영평가를 통해 이런 사안을 잡아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전문가는 “공공기관의 내부 정보 악용은 경영평가보다는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을 통한 제재가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공기업 경영평가단장을 맡은 박춘섭 전 조달청장은 최근 LH 직원 투기 사태가 2020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번 평가는 이미 배점이나 지표가 다 나가있다”며 “(LH에 대해서는) 평가를 해 봐야 알지 현 상태에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전 청장은 “각 기관에서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제출한 자료를 보고 공공기관 경영평가 당초 취지에 맞게 평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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