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행위 조사 시 거래유형과 연관성에 주목해야
직매입 유도, 납품업자의 협상력 제고를 통해 추진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통업계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조사할 때 거래유형과의 연관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6일 이진국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의 ‘대규모유통업의 거래유형 분석과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유통 업계의 공정거래질서 확립과 상생협력,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정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거래행위를 조사 적발함에 있어 거래유형과의 연관성을 더욱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화점업계의 법위반 사안들에 있어서는 특약매입이 줄곧 도마에 올랐으나 나머지 업계에 대한 조사에서는 거래유형과의 연관성이 충분히 고려되고 있지 않다고 보고서는 봤다.
2019년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PB상품 거래에서 부당 반품과 부당 대금 결정·감액은 일반 제조하도급거래에서보다 각각 2.4배, 2.7배 많이 발생했다. PB상품의 특성상 직매입 거래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 연구위원은 “이는 정책당국의 감시와 적발 기능을 보다 효율화하기 위해 거래유형을 조사의 중심에 두어야 함을 시사한다”며 “직권조사나 유통분야 서면실태조사를 수행할 때 거래유형의 관점에서 거래 양상과 법위반 혐의들이 파악되도록 조사의 방향과 질문의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행 ‘특약매입거래에 관한 부당성 심사지침’은 주요 부당성 판단 기준으로 비용분담의 부당성과 판촉행사 참여의 강제성을 담고 있는데, 특약매입에서 불거진 불이익제공행위의 주된 유형이 계약조건 변경임을 고려하여 ‘계약변경의 부당성’도 중요한 기준으로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납품업자의 협상력 제고를 통해 직매입 유도가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약매입과 연관된 불공정거래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고 납품업계의 안정과 성장을 위하여 향후 직매입을 확대하는 정책에 무게가 실릴 수 있는데, 정책적으로 특정 거래유형이 선택되도록 개입하는 것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거래유형은 유통업태, 상품군, 거래비용 최소화 유인, 협상력 격차 등이 상호작용하여 결정되므로 이러한 요인들 간의 영향 관계를 살피지 않은 제도는 자칫 시장생태계의 혼란과 거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봤다.
이 연구위원은 “직매입 유도는 유효한 기저 요인인 납품업자의 협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납품 거래선을 다변화해 특정 유통업체로의 거래의존도를 낮추고 시장 상황에 밝은 사업자 단체가 납품대금 조정 협의권을 바탕으로 계약 내용을 점검·협상하는 환경을 조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협상력 격차 완화는 직매입 확대로 이어질 수 있고 유통·납품 업계 간의 대등한 계약 문화 정착에 기여하며 시장교란의 우려로부터도 자유로우므로 장기적으로 추진되기에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유통기업의 성장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보고서는 급변하는 시장환경을 맞이해 유통업계 스스로도 혁신의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통업자가 납품업자와의 계약에서 재고부담을 최소화하는 행위는 당장의 손실 회피를 위해 당연히 구사될 수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막대한 구매력과 협상력의 우위를 앞세워 납품업체에 재고부담을 전가하고 높은 유통마진을 확보하는 데에만 몰두한다면 그만큼 서비스 혁신을 통한 성장가능성은 낮아지기 마련이라는 지적이다.
이 위원은 “현재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온라인쇼핑 시장의 급성장과 더욱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높은 유통마진에 의존한 성장전략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며 “이제는 자체 MD를 확대 육성하고 매입 역량을 발달시키는 등의 투자와 혁신을 통해 유통기업마다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갖추고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사업전략을 변화시킬 때”라고 했다.
보고서는 코리아세일페스타가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나 중국의 광군제에 견주어질 수 있는 대규모 할인행사로 당장 자리매김하기는 어려우므로 새로운 행사 콘셉트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비교적 직매입 비중이 높은 대형마트·SSM·편의점·온라인쇼핑 업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해 볼 수 있지만 이들 업태의 직매입 상품이 각종 식품류와 생활필수재임을 고려하면 할인율이 크더라도 가격 하락 폭은 크게 체감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위원은 “코세페를 지속한다면, 행사 기간을 단축하고 정부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쇼핑 축제들을 통합해 행사의 집약도를 높여야 한다”며 “지자체와 협조해 행사 기간 동안 만이라도 대규모점포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 휴업을 포함한 여러 규제들을 걷어내 이른바 ‘규제 프리 쇼핑기간’으로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통업계 전반에서 직매입 비중이 뚜렷하게 확대되기 전까지는 체감이 잘 되지 않는 할인율을 내세우기보다 판매 여건과 구매성향에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소비자들을 유인야 한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