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배당 제한 온도차···시중은행엔 ‘자제’ 국책은행엔 ‘예외’
기업은행, 민간은행 대비 부실 대응력 ‘취약’
민간 배당은 줄이더니 기재부 몫은 500억 넘게 늘어···형평성 논란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지난해 말부터 금융당국이 민간 금융지주와 은행권에 ‘배당 자제령’을 내리면서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배당성향을 축소하고 나선 가운데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홀로 배당 제한 규제를 비껴나갔다. 2020년도 배당성향이 30%에 육박하면서다. 기업은행의 배당금 총액은 3729억원으로 지난해 별도 당기순이익이 1조2632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배당성향은 29.5%에 달한다. 지금까지 배당성향을 발표한 금융지주와 은행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민간 금융지주들은 줄줄이 배당성향을 축소했다. KB금융의 지난해 배당성향은 20%로 전년 대비 6%포인트 하락했으며, 하나금융도 배당성향을 금융당국의 배당 자제 권고안에 딱 맞춘 20%로 결정하면서 전년(25.78%) 대비 6%가량 축소됐다. 신한금융은 금융당국의 권고를 넘기고 5대 금융지주 중 처음으로 20% 이상의 배당성향을 나타냈지만 타 금융지주와 마찬가지로 전년보다 배당성향이 줄었다. 우리금융은 아직 배당성향을 정하지 못했으나 4대 금융지주 중 실적이 가장 저조한 만큼 배당성향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은행임에도 민간과 국책이라는 차이로 배당 기조가 확연히 갈리자 주주들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은행권을 향한 금융당국의 배당 자제 권고가 국책은행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당초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에 배당 성향 제한을 요구한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충격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배당성향을 높이기보다는 배당금에 투입될 자금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아 부실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업은행이 배당 자제 권고 대상에서 제외된 데는 국책은행이라는 특성상 고배당을 하더라도 자본건전성에 무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가 국책은행의 손실을 보전해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업은행의 부실 위험 대비 상환여력은 여타 은행에 비해 취약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고정이하여신(NPL) 대비 충당금 적립액을 나타나는 NPL커버리지비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기업은행이 98.08%로 100%에 미치지 못했다. KB국민은행(140.39%), 신한은행(132.02), 하나은행(124.79%), 우리은행(151.1%) 등 다른 시중은행들의 NPL커버리지비율이 100%를 훌쩍 넘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시중은행 주주들이 줄어든 배당금에 불만을 터뜨리는 사이 기업은행의 최대주주인 기획재정부는 전체 배당금의 절반이 넘는 2208억원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년 대비 546억원 많은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기업은행의 고배당 결정이 사실상 정부기관의 배당수입 확보를 위한 금융당국의 ‘내로남불’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배당 제한 정책과 관련해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은행의 손실흡수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해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기업은행의 고배당 결정으로 배당 자제령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해명은 무색해지고 오히려 ‘관치금융’의 오명만 더 굳어졌다. 경제적 불안을 잠재워야 할 금융당국이 경제적 ‘불만’만 키우고 있는 형국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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