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호지 현대차 전무 최근 사임···부친 설영흥 전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60년 지기
화교 출신 설家 개인회사 서영, 설립 3개월 만에 현대모비스 거래처로···최근 15년, 매출 7배 신장

2016년 현대차 창저우공장 준공당시 설영흥 전 현대차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설호지 현대차 전무. /사진=현대차
2016년 현대차 창저우공장 준공당시 (좌측 사진 왼쪽부터)설영흥 전 현대차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설호지 현대차 전무(우측 사진). / 사진=현대차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설호지 현대자동차 전무가 퇴임했다. 설 전무는 현대차 중국 진출을 도모하고 성장시켰던 주역인 설영흥 전 현대차 부회장의 장남이다. 설 전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고문의 최측근 인사다. 이들 부자가 차례로 현대차그룹을 떠났지만 사업적 협력은 계속된다. 설 전 전무가 최대주주로 있는 ㈜서영을 통해서다.

서영은 자동차부품의 수출포장업과 포장용 목재류 등을 제조·판매하는 업체다. 공시에 따르면 서영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84.4%다. 핵심거래처는 현대차그룹이다. 업체는 공시를 통해 매출 75% 이상이 현대차그룹을 통해 발생한다고 소개한다. 업계에 따르면 잔여매출 역시 현대차 하청업체를 통해 이뤄진다. 사실상 현대차그룹 사업을 통해 유지되는 업체다.

2004년 연매출 337억원이던 서영은 2018년 2355억원으로 역대 최고 매출을 달성했다. 이듬해에는 소폭 하락한 2257억원을 나타냈다. 15년 만에 7배 가까이 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친 2008~2009년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가파른 매출 상승세를 유지했다. 적자없이 매년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실현했다. 

서영은 출범 초기부터 현대차그룹 사업을 도맡아 사세를 확장했다. 1991년 11월 서영유압이란 이름으로 출범한지 3개월 만인 1992년 3월 현대정공(현·현대모비스)의 거래업체로 등극했다. 같은 해 7월에는 현대중공업과도 거래를 시작했다. 1992년 2, 3월에는 각각 현대차·기아차 등과 2008년 7월에는 현대제철과 차례로 계약관계를 맺었다.

일반적으로 신생업체가 대기업 일감을 수주하기란 쉽지 않다. 요건을 갖추더라도 거래처로 등록되기 상당히 까다로운게 사실이다. 서영이 출범부터 현대와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던 배경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있었다. 서영 설립자 설영흥 전 부회장은 정 명예회장과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관계를 이어 온 막역한 관계다.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설 전 부회장은 화교 출신이다. 부친이 서울 중구 명동에 중식집을 운영했는데, 정 명예회장이 경복고 재학시절 이곳을 즐겨 찾다 인연이 시작됐다고 알려진다. 당시 설 전 부회장 부친은 무역사업도 병행했는데, 이를 설 전 부회장이 이어받아 중국·대만을 오가며 사업을 펼쳤다. 그가 납품뿐 아니라, 현대에서 직접 근무하게 된 것은 서영을 설립한 지 3년 뒤인 1994년이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정공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설 전 부회장을 현대정공 고문으로 위촉했다. 막역한 지인이자 거래처 대표였던 그를 영입한 배경에는 중국시장 진출을 염두했기 때문이었다. 설 전 부회장은 1999년에는 현대차 중국담당 고문직을 맡게 됐으며, 현대차그룹의 중국시장 진출을 진두지휘했다. 이 같은 공로를 바탕으로 2004년에는 현대차 부회장에 임명됐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오너가를 제외한 일반 직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지위는 부회장이다. 전문경영인(CEO)으로 재직을 마친뒤 고문으로 위촉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설 전 부회장은 고문으로 현대차에 합류한 뒤 부회장으로 재직했다. 정 명예회장이 중국시장 진출을 앞두고 그를 영입한 배경에는 중국 특유의 ‘꽌시’ 문화가 자리했다.

꽌시는 ‘관계(關係)’의 중국식 발음이다. 강진석 한국외대 중국어과 교수는 저술한 ‘중국의 문화코드’를 통해 “꽌시는 단순히 개인관계를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경영이나 경제 시스템 기저를 이루는 실체다”고 설명했다. 전직 현대차 한 고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이 중국사업 진출을 위해 현지이해도가 높고, 장시간 교류했으며, 언어도 능통할 뿐 아니라 개인적 친분도 두터워 믿을 수 있는 설 전 부회장을 영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 전 부회장은 현대차 중국공장 인허가 및 자동차 생산허가 등을 확보하는 데 전면에서 활약했다. 2001년 현대차는 현지에서 ‘아반떼’ 생산을 시작하며 시장진출을 본격화했다. 자연히 현대차 중국법인 핵심은 이른바 ‘설 전 부회장 라인’으로 채워졌다. 대(代)를 이어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문화 특성에 발맞춰, 설호지 전 전무도 현대차 중국법인에 합류했다.

2014년 부회장직을 내려놓은 설 전 부회장은 이후에도 상임고문직 등을 맡아 현대차 중국 사업을 계속했지만, 정의선 현대차 회장 체제로의 개편이 가속화되면서 위상이 약해졌다. 동시에 한·중 양국 간 정치·외교적 이슈에 따른 실적악화도 지속되면서 현지법인의 개편작업도 단행됐다. 

이들 부자가 차례로 현대차그룹을 떠났으나 서영을 통한 ‘현대차와의 꽌시’는 지속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거래처는 각 계열사 별 확고한 기준에 따라 선정된다”면서 “개인의 용퇴 여부와 사업거래 지속성은 별개문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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