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 이후로 공사계획인가 기간 연장···존폐 찬반 논란 재점화 조짐
“백지화시 원전 산업 붕괴 우려” vs “경제성보단 환경 가치 중시로 변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국내 건설 중인 마지막 원자력발전소인 신한울 3·4호기의 존폐 여부가 사실상 다음 정부로 넘어가면서 일각에서 공사 재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원전 폐쇄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하지만 2년이란 시간이 추가로 주어지면서 변동성은 커진 상황이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날 오후 에너지위원회를 열고 이달 27일 만료 예정인 신한울 3·4호기의 공사계획인가 기간을 2023년 12월까지 연장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사업 취소시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받을 불이익을 막기 위해서다. 이번에 공사계획인가 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한수원은 향후 2년간 신규발전사업 참여가 제한된다. 비용 보전 관련 법령 등 제도적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사업허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이번 결정이 공사 재추진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정책과 관계자는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 가능성에 대해 “원만한 사업 종결을 위해 그 기간까지 사업 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연장한 것이지 사업 재개를 위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날 에너지위원회에 참석한 한 위원은 “위원회에서 신한울 3·4호기 공사재개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며 “매몰비용에 대해 한수원과 산업부가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 보고를 듣는 정도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공사 재개와 관련이 없는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신한울 3·4호기로선 2년이라는 시간을 번 셈이 됐다. 2023년 12월이면 차기 대선 이후로 차기 정권의 인식에 따라 신한울 3·4호기의 운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여론조사의 추이를 보면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 중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집권 여당 출신 인사들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추세는 현 상황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올 연말 정도 되면 데이터를 근거로 어느정도 대권 가능성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망을 하기는 어렵다”며 지금의 여론조사 1위는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최근 논란이 된 북한 원전 문건에서 추진 방안으로 제안된 세 가지 안 중 두 개의 안이 신한울 3·4호기를 활용한 방안이었다. 남북 경협의 물꼬가 터지면 신한울 3·4호기가 활용될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 산업부가 공식적으로는 신한울 3·4호기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에서는 신한울 3·4호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북한 원전 문건 같은 경우 그 당시 산업부 내에서 검토했던 대안의 하나로 고려됐던 것이고 현재 이 사안과 관련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며 “신규 원전은 짓지 않겠다는 정부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이번 신한울 3·4호기는 현행 법 규정에 맞춰 사업자 불이익 방지 등을 고려해 연장한 것이지 정부의 정책 방향성이 바뀐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신한울 3·4호기는 사업 취소시 매몰비용의 처리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주기기 제작에 이미 투입했다고 주장하는 4927억원을 포함해 총 7790억원의 사전 투자비 처리를 두고 법적 분쟁 가능성이 일고 있다.
탈원전 찬반론자들은 신한울 3·4호기의 백지화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맞서왔다. 원자력계는 신한울 3·4호기를 살려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원자력은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에너지이며 비용 또한 저렴하다고 강조한다. 신한울 3·4호기 추진 청원게시판을 만들어 70만명 이상이 청원을 한 상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전력공사가 책정한 전력단가를 보면 원자력과 석탄에서 얻은 이득으로 액화천연가스(LNG)나 재생에너지를 사는 상황”이라며 “원자력을 줄이면 재생에너지를 사 줄 돈이 부족해지고 결국 국민이 세금을 더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몰 비용에 대해서는 “원전 관련 물건 제작과 부지 매입, 종합 설계에 들어간 돈과 계약 취소된 부분까지 합치면 신한울 3·4호기에 이미 1조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갔다”며 “이 비용문제를 놓고 산업부와 한수원이 각각 책임을 면하기 위해 중단도 아닌 중지 상태가 이어져왔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중지 상태를 연장한 것은 법적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고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에서 내린 고육지책이라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또 원자력 산업 생태계 붕괴를 우려했다. “경남 창원에 원자력 부품을 공급하는 공장들이 많이 있는데 신고리 5·6호기 이후 물량이 끊기면서 현재 폐업 직전 상황”이라며 “지금 그 업체들이 문 닫거나 업종을 변경하면 그 업체가 미국 기계학회 등에서 받은 라이센스가 날라간다”며 “산업 생태계를 살리려면 일자리를 줘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신한울 3·4호기를 당연히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한울 3·4호기가 끝내 사라지게 된다면 대한민국 역사상 전력 수급계획에 들어가 건설 중에 없어진 게 첫 사례가 된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단한 것은 나름의 배경이 있다. 이전 신고리 5·6호기를 두고도 논쟁이 뜨거웠고 신규 핵발전소에 대한 안전성, 위험성에 대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시대가 변하면서 기본적인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있었던 경제성보다 환경에 대한 가치를 더 중하게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삼척 석탄 화력발전소도 탄소 중립 때문에 못한다고 하고 있다. 앞으로 좌초자산이 생길 텐데 좌초자산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지화시 발생할 손실비용에 대해서는 “신한울 3·4호기는 공사를 착공하지도 못한 계획 중인 발전소”라며 “자금이 8000억원 가량 들어갔다고 하는데 전체 건설비용에 비하면 10%도 채 쓰지 않았다. 이것도 사실 계약서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관례상 몇몇 업체들이 제작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약도 안 했는데 어차피 우리 것을 쓸테니 우리가 먼저 만들어놨다는 식의 논리를 갖고 몇 년을 끌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신한울 3·4호기 백지화 방침이 정해진지 4년 가까이 지났는데 관련 후속조치를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이런 움직임이 있는 게 굉장히 안타깝다”며 “핵발전소가 경제성이 있냐는 것은 오래된 논란거리다. 이미 다 지어진 것도 아니고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발전소의 경제성을 따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매몰비용과 관련해 두산중공업과 한수원과의 관계는 정부가 관여하는 부분은 아니고 사전에 관행적으로 제작한 부분에 있어 양사간 우선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며 “다만, 정부는 정당하게 지출한 비용에 대해서는 비용을 보전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기에 따라 전기사업법 시행령이나 국회 상정된 관련 법령 등을 통해 비용보전 근거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금액이나 정도의 차이는 논의 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