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구성원 부정적···“정년연장으로 인한 연금 부실화 대비 가능”
인건비 재원 마련시 기본급 인상·성과급 대신 신규 채용 강제 방안도

지난해 11월 열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위원회 회의 모습. 이날 공공기관위원회는 "객관적 직무 가치가 임금에 반영되는 임금 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열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위원회에서 참가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공공기관위원회는 "객관적 직무 가치가 임금에 반영되는 임금 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장기화로 민간기업들의 인건비 지출 축소 등 비용 줄이기가 최대 현안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공공기관들의 방만경영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신의직장'으로까지 불리는 공공기관의 호봉제가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에 대비해 직무급제 도입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1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정부는 호봉제 중심인 공공기관 임금체계의 대안으로 직무급제를 도입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직무급제는 직무의 가치에 따라 기본급이 결정되는 보상체계이다. 

현재 공공기관 임금은 근속 기간을 토대로 임금을 지급하는 호봉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호봉제는 과거 고도성장기에 노동자의 장기 근속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지만 저성장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늘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 인건비 개혁 방안으로 직무급제를 제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는 반대한다. 그러나 단순히 연공서열로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도 옳지 않다”며 “앞으로는 새로운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에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위원회가 공공기관의 임금 체계를 직무급제로 개편해나가겠다고 하는 등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직무급제는 정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해왔다. 

직무급제는 연금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현재 청년 실업 문제가 워낙 부각돼 정년 연장 문제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늘면서 정년 연장 압박이 커지고 있고 정년이 연장되면 연금 재정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을 대비해 보수 시스템을 호봉제에서 직무급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정년을 65세로 올렸을 때 직무급을 낮은 등급으로 하면 경영진의 임금 부담이 일정부분 해결되는 면이 있다.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현재 직무급제는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노동계와 구성원들이 “임금 삭감의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무급제가 되면 나이가 많은 근로자는 호봉제에 비해 급여가 줄어들 것이 확실시되기에 현실적으로 도입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서 보수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에 대응하기가 어려울 것이기에 어려워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전문가들은 직무의 난이도, 가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기준을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 낼지 여부가 직무급제의 성패 여부를 가릴 것으로 판단한다. 직무급제에서 합리성, 공정성이 바탕이 돼 보수가 결정된다면 거부감이 많이 없어질 것이고, 이를 통해 직무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면 성공적인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배귀희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는 “직무급제는 보수결정에서 공정성 담보가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 평가기준에 대한 준비가 많이 부족하다”며 “이해관계가 첨예해 논의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지속적으로 공론화 하면서 의견 수렴을 하는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찬반양론이 계속 남아있겠지만 극단적인 찬반을 제외하고 찬성이 60~70% 정도 된다면 추진 동력이 생길 것이란 예상이다. 

직무급제 도입은 2~3년의 시차를 두고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정치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5년 단임제이다. 어떤 분이 대통령이 돼서 개혁하려 할 때 취임 2년차 정도 현황 파악을 하고 3년 정도부터 하겠다고 하면 사실상 동력이 떨어지게 된다”며 “정책이 담론을 형성하고 여론의 합의를 거쳐서 시행되기에는 시간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공공기관 인건비를 신규채용에 초점을 맞춰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시간 외 근무 축소나 연차 사용을 통해 인건비 재원을 마련하면 기본급 인상이나 성과급 추가 지급이 아닌 청년 신규 채용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인사혁신처에 제출된 ‘공공기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원 및 인건비 제도 개선 방향’ 연구보고서는 공공기관의 조직과 정원에 관한 지침에 ‘공공기관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에 따라 시간외 근무 및 연차보상을 축소시킬 경우 그 재원으로 탄력정원을 설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아직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 보고서를 집필한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스스로가 노사협상을 통해 효과가 나타날 정도로 임금구조를 개혁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임금 결정은 노사 자치적인 측면이 있어 강제하기도 어렵다”며 “차라리 조심스럽지만 합리적인 강제화를 하는 게 필요하다. 그냥 자치에 맡겨두면 하지 말자는 얘기랑 무엇이 다른가”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구조상 인건비의 범위나 순증 부분 등의 개선을 자율에만 맡기면 담론으로 끝나고 실제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면이 있다. 제안 수준에 머무르면 안하느니만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을 비롯한 공공부문의 개혁은 민간부문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한다. 역대 정부를 보면, 보수 정부 때는 정부가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상태에서 민간에게는 비정규직을 줄이라고 하는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있었다. 진보 정부에서는 임금체계 개선, 직무급제 도입 등을 공공부문에 주문했지만 실천이 안 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조 교수는 “공공부문 개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정부가 민간부문에 개혁하라고 촉구할 명분이 없어지게 된다. 공공부문이 임금체계를 개선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간부분에게 어떻게 임금체계 개선을 요구하겠는가”라며 “이런 모순된 상태에서 정부가 미래세대를 위한 청년고용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지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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