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제한 시작 지점 불명확해 ‘옥중경영’ 가능성 제기
'취업 승인' 신청하면 법무부 심의 통해 경영 가능
사면 통한 경영복귀 사례도 상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법무부가 국정농단 뇌물 사건으로 징역 2년6월의 실형이 확정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취업제한을 통보한 가운데, 이 부회장이 예외적 심의 신청을 통해 경영을 계속할지 주목된다. 경제범죄를 저지른 임직원의 경제활동을 제한해 경제 질서 확립을 도모하기 위한 취업제한 제도는 ‘사면’ 남용으로 현실에선 유명무실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15일 이 부회장 측에 취업제한 대상자임을 통보했다.

이 통보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횡령·배임 등의 범죄로 자신이나 제3자가 5억원 이상의 재산상 이익을 취해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에 대해 징역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간 취업을 제한하도록 한 법률에 근거한 것이다. 대상 직군은 국가나 지자체가 출자한 기관, 유죄 판결된 범죄 행위와 밀접한 기업체 등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자금을 횡령해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게 뇌물을 공여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삼성전자 경영이 제한된다.

그러나 당장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다. 해당 법률 조항이 그 시작 지점을 명확한 문구로 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징역형의 집행 종료 후’에는 취업제한이 발생하는데, 형 집행 기간에는 취업제한 시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있다. 이 부회장의 ‘옥중경영’을 금지할 명시적 근거가 부족한 셈이다.

이 부회장은 또 법무부에 별도의 승인을 신청해 취업제한 통보를 무력화 할 수도 있다. 특경가법 제14조의 2항은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제한에서 제외된다고 규정한다. 이 부회장이 취업 승인 신청을 하면 법무부 장관 자문 기구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가 심의를 하고, 법무부 장관이 최종 승인하는 구조다.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을 ‘해임’하지 않는다면 이 부회장은 여러 선택을 할 수 있다.

실제 삼양식품 김정수 전 사장은 특경가법 위반(횡령)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0월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총괄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당시 법무부는 “총수일가의 부재가 길어지는 경우 경영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취업승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취업 승인을 신청할 경우 법무부가 같은 논리로 이를 받아들일 여지가 있어 보인다.

취업제한 제도는 ‘사면권’ 남용으로 사문화됐다는 비판도 받고있다.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2014년 발표한 ‘최근 10년간 총수일가가 연루된 형사재판 결과에 따른 특경가법상 취업제한 위반사례’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명예회장은 특정경제범죄법상 횡령·배임 등으로 지난 2008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지만 현대차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다가 같은해 8월 사면됐다. 최태원 SK 회장도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2008년 5월 정 회장과 같은 형이 확정됐지만, SK 대표이사 등 직을 유지하다 석달 만에 사면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법조계 관계자는 “취업제한 규정이 사기업을 운영하는 자의 취업을 국가가 제한해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재계 측 일부 의견이 있다”면서도 “‘경제질서를 확립하고 국민경제발전에 이바지함’이라는 특경가법 제1조 목적에 비춰봤을 때, 현실에서 유명무실한 취업제한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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