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차 R&D 신입채용에 배터리업체 2~3년차 ‘중고신입’ 대거응시
R&D투자 확대 현대차···“직원들에 다양한 기회제공, 소송걱정 없어”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기밀 침해 분쟁은 LG에서 SK로 100여명이 이직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양사 공방이 장기화되면서 배터리업계의 이직이 다소 침체됐던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이직수요가 현대자동차그룹을 향할 조짐을 보인다.
17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진행한 채용에 응시한 이들 중 합격자를 대상으로 통보를 실시했다. 합격교지는 지난 15·16일 양일간에 걸쳐 이뤄졌다. 내달부터 출근 예정인 이들은 △연료전지 △전동화 △배터리 △자율주행 △전자제어시스템 등 직군이다. 미래차 영역에서 활약하게 될 신입 채용이었다.
채용과 관련해 현대차 측은 “공채가 폐지되고 수시채용이 실시된 이후, 개별 사업부별로 필요한 인원을 충원하는 구조인 탓에 회사 내에서도 구체적인 채용규모가 공유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복수의 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공고 당시 ‘세 자리 수’ 로만 알려진 이번 채용 규모는 250~300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공채폐지 및 수시채용 전환 후 비교적 대규모 채용이다.
흥미로운 점은 응시한 이들의 면면이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기존 배터리 업체에서 근무 중인 2~3년차 ‘중고신입’들이 이번 채용에 대거 응시했으며, 이들 중 일부가 합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의 현대차 이직은 최근 배터리업계의 상황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LG와 SK의 법적공방이 장기화됨에 따라 배터리업계 내 이직이 둔화된 영향이 컸다. 이번 소송전의 단초가 됐던 것이 바로 이직과정에서 빚어졌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사업 현지법인(SK Battery America) 소재지인 델라웨어지방법원에 영업기밀 침해 소를 제기했다. 당시 LG 측은 앞서 2년 동안 약 100여명의 인력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조직적인 기술탈취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공방에서 최근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분위기로 LG에서 SK는 물론, 다른 배터리 업체 간 이직도 조심스러워졌던 것이 사실이다. 각 기업들 역시 경력직 채용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이 시기 현대차는 미래차 관련 투자확대를 위해 지속적인 인력 채용을 단행해왔다. 주로 경력관련 채용이 주를 이뤘다. 이번 채용은 ‘국내외 학사·석사 학위 취득자 및 2021년 2월 졸업 예정자’로 신입채용이었지만 같은 이유로 많은 중고신입들이 몰렸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는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등의 기존 고객사고, 삼성SDI 역시 현대차에 배터리를 납품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라면서 “LG-SK 때와 유사한 기밀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배터리 업체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곤란한 면이 크기 때문에, 현대차 입장에선 배터리 업체들에 비해 신입·경력 채용에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현대차가 직접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터리가 기존 내연차 엔진에 해당하는 전기차 핵심부품인 만큼 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직원을 채용하고자 하는 것”이라면서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전기·수소차를 비롯해 도심형항공모빌리티(UAM)·로보틱스 등을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지목한 것에 비춰보면, 회사 차원의 인력확보 노력은 지속되고 직원 개개인에는 다양한 기회가 보장될 것”이라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