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르츠은행···독일서 점포 절반 감축 계획 발표
“성장보다 비용절감을 통한 수익성 확보가 우선”
국내은행은 3월부터 점포 축소에 제동 걸려
[시사저널e=이용우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 점포 폐쇄에 더 강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 당국은 소비자 불편이 크다고 판단되면 은행이 점포를 없애지 못하게 하거나 출장소 전환 등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점포 축소가 소비자피해를 유발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과 독일의 대형은행들은 올해 과감한 점포 폐쇄를 공식 발표하고 있다. 이들 은행은 디지털뱅킹으로 인한 급속한 금융변화로 점포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국내은행들이 자칫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위기 겪은 글로벌 은행들···발 빠른 점포 감축 나서
10일 금융권과 외신에 따르면 유럽의 대형 은행들이 올해 점포 폐쇄 정책을 공식적으로 내놓고 있다. 미국 CNN에 따르면 코메르츠은행(Commerzbank)은 올해부터 2024년까지 1만여명의 직원과 함께 점포 340개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독일 내 점포는 현 790개에서 450개로 줄인다고 밝혔다.
코메르츠은행은 독일 도이체방크와 함께 제1의 민간은행이다. 해외에 있는 지점 직원까지 합해 총 4만85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이 은행이 대대적인 조직슬림화 정책을 내놓은 이유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독일 시장의 침체 때문이다. 독일 정부가 주도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독일 경제가 나빠졌고, 은행 수익도 떨어질 우려가 커진 것이다.
코메르츠은행 관계자는 “성장보다 수익성이 우선”이라며 비용절감을 위해 점포 축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맨프레드 크노프 최고경영자(CEO)는 “장기적으로 확고한 경영 안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독일만 아니라 영국의 금융권도 은행 점포 축소가 화두다. 코로나19를 겪은 은행들이 경기 침체와 디지털뱅킹 이용자 증가 등 경제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점포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 BBC에 따르면 영국에 본사를 둔 HSBC는 올해 4월부터 5개월간 영국 내 82개 점포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전체 점포의 13%를 줄이는 결정이다. HSBC는 이번 점포 폐쇄를 통해 앞으로 511개의 점포를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폐쇄 이유로 고객들의 디지털뱅킹 이용률 증가를 꼽았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고객들이 은행을 이용하는 방식이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HSBC는 지난 5년간 점포를 이용하는 고객이 3분의 1로 줄었고 현재 고객의 90%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코로나19 발생 이후 점포 축소 등 은행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종합금융 투자은행 제이피모건체이스컴퍼니(JPMorgan Chase & Co.)는 지난달 말 영국 진출을 발표하면서 인터넷은행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모바일뱅킹을 통해 영국의 소매 금융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인터넷은행은 런던에 본사를 두고 총 400명의 직원을 채용할 예정이다. 제이피모건체이스는 이번 인터넷은행 설립과 관련해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은행은 ‘점포 폐쇄 공동절차 개정’에 발 묶여
글로벌 은행들이 수익 안정화를 위해 점포 축소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정책에 막혀 점포를 쉽게 줄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9일 ‘은행 점포폐쇄 관련 공동절차’ 개정안을 3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또 올 1분기 중 시행세칙을 개정해 은행의 점포 신설·폐쇄 세부정보를 공시하기로 했다. 은행 점포현황을 반기마다 대외에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의 이번 추진 방향은 점포감소로 인한 고객의 금융 접근성 및 편리성 악화 방지에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점포수는 지난해 말 총 6406개로 작년 한 해에만 303개가 줄었다. 금감원은 온라인 기반의 금융거래 환경에 따라 점포 축소는 불가피하지만 여전히 디지털취약계층이 있어 이번 계획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안에 따라 은행은 점포 폐쇄 전에 사전영향평가를 밟아야 한다. 이 평가에서 점포 폐쇄가 소비자 불편을 크게 유발한다고 볼 때 점포 유지 또는 지점의 출장소 전환 등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점포를 폐쇄할 경우에도 은행은 기존의 ATM 운영 및 타 금융사와의 창구업무 제휴, 정기적 이동점포 운영, 소규모 점포 운영 등의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 평가에는 은행의 소비자보호부서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할 예정이다.
은행권은 금감원의 정책 이유에 대해 공감은 표하지만 이런 정책이 자칫 은행들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지방보다 점포가 밀집돼 있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점포를 줄이고 있는 상황인데, 당국이 점포 현황을 수시로 공시하겠다는 발표 자체가 점포 운영에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과 은행이 갑을관계인데다 당국이 최근 2~3년간 점포 폐쇄에 부정적 입장만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은행의 점포 폐쇄가 쉽지 않은 것”이라며 “비대면거래 증가에 따라 금융혁신이 일어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선 전통적 대면거래를 요구하는 상황처럼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