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서 시작돼 위를 향하는 코로나發 경제위기
위기의 분수효과, 결국엔 낙수가 돼 바닥 향한다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온 유니클로가 폐점하는 추세다. 전국 곳곳에서 속속 간판을 내리더니 최근에는 상징으로 여겨지던 명동점도 문을 닫았다. 이달에만 전국에서 10개 매장이 철수한다.

반일불매운동 여파라는 시각이 대두되지만, 온전히 그것 때문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불매운동 이전부터 유니클로의 명성은 다소 빛이 바랬던 게 사실이다. 소비자들에 과거와 같이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렴하면서도 빼어난 디자인에 다양한 색감을 자랑해왔으나, 언제부턴가 비싸다는 인식이 고개를 들었다. 스마트폰에 따라 온라인쇼핑이 더욱 활성화됐고, 대체할만한 브랜드들도 증가하면서 유니클로 명성도 퇴색해왔다. 불매운동이 앞당겼을 순 있어도, 불매운동 때문에 쇠퇴했다는 해석은 다소 과장됐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유니클로는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익을 내고 있다. 중국에서 광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한국에서 대대적인 반향을 일으켰을 때보다 더 큰 수익을 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비수익 매장을 정리하고, 중국에 투자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의뭉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매장을 축소한다 하더라도, 플래그십 스토어 성격의 명동점까지 폐점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견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그 이유로 꼽힌다.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지갑을 열던 명동은 코로나19 유행이 확산되면서 급속도로 위축됐다. 서울의 대표적인 상권인 이곳의 임대료는 천문학적이다. 명동뿐 아니라 강남역·가로수길 등과 같은 상권 매장은 유명 브랜드라 하더라도 임대료 때문에 큰 수익을 내지 못한다. 적자를 보는 매장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매장을 유지하는 것은 홍보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글로벌 패션브랜드가 명동에서까지 철수한 셈이 된다. 소상공인이 아닌 거대 브랜드가 발을 뺐다는 점은 주목 할 만 하다. 위기의 공식이 늘 그랬든 바닥에서 시작된 위기감이 점차 위를 향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일본이란 색안경을 뺀다면, 유니클로의 잇따른 폐점은 결코 긍정적인 시그널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긴장해야 할 경고등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여력의 다툼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최근 마곡에서는 아르바이트 구직난이 한창이라 전해진다. 공항과 가까워 승무원 거주비율이 높은 곳이다. 항공편 운항 급감하면서 승무원들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에 나섰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소상공인 부담 역시 커진 상황이라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는 후문이다.

항공사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게 됨과 동시에 바닥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빚어진 서글픈 단면이다. 제조업계서도 유사한 상황들이 감지된다. 퇴근 후 대리운전·배달 등에 나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설상가상 사회적 거리두기마저 장기화에 돼 특정 시간대에만 고객이 집중되거나, 날씨 등 갖은 변수로 인해 공들인 노력에 비해 적은 수익을 거두는 게 현실이다.

코로나에 따른 경기위축이 중소기업·대기업 등으로 확장되고, 위기감이 재차 소상공인과 일반에 전가될수록 고충은 가중된다. 경제적 낙수효과는 이론에 그쳤을지 몰라도, 얼어붙은 경기가 만든 위기의 분수효과는 낙수를 야기한다. 날이 잔뜩 세운 고드름으로 변해 위태롭게 매달린 모양새다. 그 고드름은 바닥을 겨누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이어지면서 정부의 지원은 소상공인과 일반에 집중됐다. 당연한 이치다. 경제적 약자를 향한 손길이 우선시돼야 함은 당연하다. 다만 기업에는 가혹했다. 코로나 상황임에도 강도 높은 규제가 지속적으로 신설됐다. 우려를 표하면 ‘옹호 좀 적당히 하라’며 규탄 받아야 했고, 정부의 방향성과 배치되는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됐다.

기업들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를 맞아 여력이 큰 대기업조차 힘겹다 할 정도인데, 규제의 당사자인 이들의 우려도 ‘앓는 소리’로 치부됐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기업을 향한 정부의 온도차는 늘 있어왔다. 사실 모두가 친화적일 필요도 없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장기화될수록 소상공인과 일반에도 긍정적일지는 따져 볼 문제다.

모래성일지라도 무너뜨리기 위해 쌓지는 않는다. 어느새 발밑을 적시기 시작한 파도가 차차 모래성을 삼킬 뿐이다. 내다봤다면 피할 수 있는 곳에 쌓았겠지만, 겪어보지 못한 수위를 가늠하기란 불가능하다. 모래성이야 다시 쌓으면 그만이지만, 허물어진 경제를 돌이키기란 불가하다. 겪지 못한 파도에도 지켜내야 한다. 그게 정부의 역할이다.

유니클로의 폐점은 승리가 아닌 위기의 시그널인지도 모른다. 반일불매운동의 결과로만 해석되는 것은 과도하게 단편적인 시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유독 기업들에 무심했던 정부가 과도하게 단편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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