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일·달걀·한우 등 가격 상승···현재는 수급대책 외 물가 안정 수단 없어
심화된 대책 필요성···생산자 조직 육성·비축 품목 확대·상하한제 등 대안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설 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농산물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공급 부족으로 쌀과 과일, 한우 등 설 제수용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명절을 준비하는 국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단기적인 수급조절을 넘어 차원 높은 농산물 가격안정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통계청과 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농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0.0% 오르며 지난해 11월(11.1%), 12월(9.7%)에 이어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특히 조류인플루엔자(AI)로 수급차질을 빚는 달걀은 15.2% 올라 지난해 3월(20.3%) 이후 최대 상승폭을 보였다. 돼지고기(18.0%), 국산쇠고기(10.0%), 사과(45.5%), 파(76.9%), 고춧가루(34.4%), 양파(60.3%), 쌀(12.3%) 등이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다만, 배추와 무, 토마토, 애호박 등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최근 농산물 가격이 수급문제 때문에 올랐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품목별로 가격이 오른 요인과 양상은 각각 다르다는 분석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사과, 배 등 과일은 지난해 태풍, 장마, 냉해 등으로 인해 공급량이 많이 줄었다”며 “이들 품목은 1년에 한 번 수확하고 연중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당초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에 연중 공급량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계란은 AI 영향으로 공급이 감소하면서 가격이 올랐다”며 “종합적으로 보면 평년보다 20% 정도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농산물 가격 상승은 1차적으로 수급문제이다. 공급이 부족하고 밀가루 같은 원자재 가격이 올라가는 영향도 있다”며 “수입 농산물의 경우 원료 농산물은 통화 팽창으로 인한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해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올랐다”며 “농산물 가격은 공산품과 달리 가격이 일정한 변동이 있는 게 정상이다. 폭락, 폭등은 문제지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농산물은 수급 탄력성이 낮아 조그마한 외부 변수에도 가격이 출렁이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대책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단기적인 물가안정 수단은 저장해 놓은 농산물을 풀거나 수입해서 공급하는 것 외에 다른 정책이 사실상 없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수급조절을 넘어 농산물 물가 안정을 위한 장기적이면서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통상 문제를 야기하고 신속 추진이 어려운 제약이 있기에 수급은 생산자 조직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국승용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장은 “대부분 선진국들은 정부가 개별품목 물가에 개입하지 않고 생산자 조직들이 정부와 협력해서 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전체적으로 수급을 관리하고 정부와 협력해서 가격을 안정시키기 때문에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추진할 수 있다”며 “우리는 협동조합들이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항상 나서서 하다보면 타이밍이 늦거나 여러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개별 생산자 조직을 키워 그들이 수급을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말했다.
가격 상한제와 비축 확대 방안도 나온다. 김호 교수는 “가격 상하한선을 두고 그 안에서 변동은 허용하되 가격이 많이 올랐을 때 가격에 대한 일부 보전을 전제로 가격을 낮추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가격 안정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김한호 교수는 “비축 품목을 늘릴 필요가 있다. 우리는 쌀 위주로 비축을 하고 있는데 물가 영향이 큰 밀과 콩도 비축 품목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발빠르게 농산물 물가 대책을 내놓고 있다. 현재 쌀의 경우 부족분이 약 20~30만톤, 정부 비축량은 100만톤 이상이다. 지난달 8만톤 가량을 농협, 도정업자에게 인도했으며 앞으로 37만톤 정도를 단계적으로 방출할 계획이다.
사과, 배의 경우 정부 비축분은 없지만 농협을 통해 직거래방식으로 낮은 가격에 많은 물량이 공급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달걀은 최근 미국에서 긴급 수입했지만 소비자들이 수입달걀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 변수다. 당장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가공식품, 빵 쪽으로 공급이 되면 전체적인 달걀 공급량이 늘어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국 본부장은 “소고기는 명절 지나면 떨어질 것이다. 쌀은 올해 햅쌀 나오는 시점까지 평년보다 높은가격이 계속될 것”이라며 “달걀은 AI가 날씨가 따뜻하면 줄어들기 때문에 3~4월 정도면 가격이 완만하게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최근 성수품 및 축산물 수급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이 시행되면 물가가 지금 수준보다 더 올라가지 않고 설명절 수요가 끝난 뒤 점차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향후 배추, 무는 비축하고 있는 것을 가격 상황에 따라 추가로 방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호 교수는 “농산물 가격은 갈수록 변동폭이 커질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작물들 작황이 늘거나 줄어드는 품목이 있다. 시장 개방으로 외국농산물이 들어오면 가격이 폭락하고, 이 영향으로 농가에선 소득작목에 집중하면 과잉생산이 일어나는 등 가격 변동이 커질 것이다. 정부에서는 가격안정을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