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신세계 빅딜 이면엔 최태원·정용진···‘매각설’ 베어스 지켜낸 두산家
홍보효과 미미해도 야구단 지속 가능했던 원동력···“구단주의 관심·지원”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신세계그룹이 SK와이번즈를 인수했다.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펼친 두산은 시장의 예측과 달리 끝내 야구단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같은 재벌들의 선택 배경엔 오너의 의중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세계그룹 야구단 인수주체는 이마트다. 팀명 앞에 붙을 사명은 SSG로 확정됐다. 연고지 인천과 기존 와이번즈 구단 임직원 및 선수단의 고용은 승계됐다. 내부적으로 와이번즈를 대신할 새로운 팀명과 새 구단의 팀 컬러 및 엠블럼·캐릭터 등을 순차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신세계 측은 이번 인수를 두고 “장시간 추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전략이 반영됐다고 평가된다. 정 부회장이 향후 신세계의 경쟁상대가 테마파크·야구장이 될 것이라 강조한 뒤 신세계는 백화점·스파·놀이공간 등이 한 데 묶인 ‘스타필드’를 선보였다. 체험형 가전전문점 ‘일렉트로마트’ 등도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도 화성에 국제테마파크 개발에 착수했으며, 야구장까지 확장했다.
SK의 매각에도 최태원 회장의 심중이 반영됐다. 최 회장은 금년 신년사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본격화 하겠다”고 선언했다. 20여일 뒤 야구단 매각이 결정됐다. 스포츠를 수익활동이 아닌 사회공헌에 초점을 맞춰, 추후 비인기 종목에 지원하겠다는 뜻이 내포된 결정이라는 게 SK 측의 설명이다.
두산은 경영난에도 야구단을 지켰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때부터 참가한 두산은 이례적으로 흑자를 내는 구단이다. 소비재에서 중공업 위주의 그룹 체질개선에 나섰을 때도 야구단은 매각하지 않았다. 당시 OB맥주는 시장에 내놨지만, OB베어스는 두산베어스로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유지해왔다.
프로야구계 변화의 중심은 대기업이다. 각 기업 의사결정권은 총수에 집중된다. 신세계·SK의 빅딜은 물론, 올곧게 두산을 지킨 선택을 한 이도 결국 총수라는 의미다. 사실 야구단은 수익과 무관한 각 그룹의 계열사다. 오너의 의중이 없다면 애초부터 유지되기 힘든 분야다.
10개 구단 체제의 국내 프로야구 구단주 상당수는 재벌이다. 독자적인 기업으로 사업을 이어오는 히어로즈와 총수가 없는 기업집단인 KT위즈 등을 제외한 8개 구단이 재벌 소유다. 신세계·두산 외에 야구단을 운영하는 재벌은 중인 곳은 삼성(라이온즈), 현대차(기아타이거즈), LG(트윈스), 롯데(자이언츠), 한화(이글스), NC(다이노즈) 등이다.
한 야구계 인사는 “프로야구 출범 초기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야구단의 상업적 기능은 미미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야구단은 과거에도 적자였으나, 그나마 홍보효과라도 거둘 수 있었다. 인터넷·스마트폰 보급으로 홍보채널이 다변화되면서 그 기능이 약화됐다. 그럼에도 야구단 숫자는 오히려 늘었다.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 전두환정권이 내세운 3S(Sex·Sports·Screen) 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했다. 자연스레 재벌 대기업 중심의 리그가 창설됐다. 정부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셈인데, 어차피 적자를 감내해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당초 기업들은 야구단을 홍보수단으로라도 활용하고자 했다.
첫 시즌에는 ▲해태타이거즈 ▲OB베어즈 ▲롯데자이언츠 ▲삼미슈퍼스타즈 ▲삼성라이온즈 ▲MBC청룡 등 6개 팀이 참가했다. MBC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 모두 소비자 중심의 사업을 펼치던 곳이었다. 삼미는 식용유·비누 등 사업이 모태다. 삼성도 CJ·신세계 등과 분리되기 이전이었으며 삼성전자도 가전매출 비중이 높을 때였다.
삼미슈퍼스타즈를 인수한 청보핀토스 모기업 풍한방직은 섬유회사다. 청보를 인수해 돌핀스를 창단한 태평양(현·아모레퍼시픽)도 화장품이 주력이다. 7번째 구단으로 참가한 한화도 당시에는 계열분리 이전인 빙그레를 이글스 앞에 붙였다. 1990년 첫 선을 보인 8구단 쌍방울레이더스도 마찬가지로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업체였다.
LG는 MBC청룡을 인수해 1990년부터 리그에 가세했다. 회사 본사(쌍둥이빌딩·트윈타워)에서 착안해 트윈스라 팀명을 정했지만, LG란 상호는 당시로선 생소했던 게 사실이다. 그룹명도 럭키금성그룹이었다. 1984년 발족된 LG애드를 제외하면 럭키·금성·럭키금성·반도 등의 각양각색의 상호들을 계열사가 사용했다.
LG라는 통일된 체계를 갖춘 것은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가전·생활용품 등의 사업을 영위했지만, 야구단 운영을 통해 그룹 전반의 이미지개선과 통일화 된 상징성을 마련했다는 데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 이처럼 초기 프로야구단은 홍보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2000년 이후로 넘어올수록 홍보효과는 희석됐다.
적자사업임과 동시에 홍보효과도 반감한 야구단 운영을 두고 야구계에서는 구단주들의 애착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존속이 어렵다고 지목한다. 비록 나름의 이해관계 속에서 출범했고, 이 과정에서 각 기업들이 최대한의 실익을 추구한 것이 사실이지만, 총수들의 애착 등이 밑거름 돼 장시간 프로야구가 지속될 수 있었다고 재계와 야구계는 공통적으로 입을 모은다.
야구계 관계자는 “구단들 중에서도 LG트윈스는 선수들에 대한 대접이 남다르기로 유명한 구단”이라면서 “이는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부회장이 차례로 구단주를 맡으며 물심양면 지원하면서 이 같은 문화가 형성된 것이며, 삼성라이온즈·한화이글스·NC다이노스 등도 구단주가 곧잘 야구장을 찾으며 애정을 드러내며 상당한 투자를 감행한 바 있다”고 시사했다.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모 그룹 관계자는 “그간 야구계의 행보에 비춰봤을 때 신세계의 참여는 이례적으로 비춰지는 게 사실”이라면서 “어떤 기업보다 의욕적으로 참여했고, 기존의 사업들과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