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유통망, 동의 없는 개인정보 활용 여전
본사 차원 관리감독도 소홀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최근 IT업계 화두는 단연 스캐터랩의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이루다’였다. 이루다는 스캐터랩의 ‘연애의 과학’ 앱 이용자가 나눈 대화 데이터 약 100억 건을 딥러닝 기법으로 학습시켜 탄생했는데 출시하자마자 성적도구화부터 시작해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일었다.
20대 여대생으로 설정된 이루다는 이전에 나왔던 챗봇들과 달리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사용자를 끌어모았다.
일부 이용자들은 이루다를 성적 도구화했고 여기에 이루다가 게이와 레즈비언 등 성 소수자를 비롯해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낸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커졌다. 논란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문제로 이어지면서 논란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개발사 스캐터랩이 자사 앱 서비스 ‘연애의 과학’ 이용자들로부터 동의를 받지 않고 수집한 데이터를 이루다에 학습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개인정보를 수집했음에도 이용자들에게 명확한 고지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스캐터랩의 일부 직원들은 이렇게 수집된 개인의 사적 대화 내용을 공유하고 '깃허브'라는 개발자 사이트에 유출시키기까지 했다.
스캐터랩은 “수집된 메시지 정보가 '신규 서비스 개발' 및 마케팅, 광고에 활용될 수 있다"고 명시했으며 이에 대한 이용자들의 동의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용자가 동의·비동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고지 형태라는 점과 동의와 관계없이 수집된 정보를 다른 앱 개발에 사용해도 되는지 여부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결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스캐터랩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 조사에 나섰다. 이루다는 출시 한 달도 안 돼 종료됐다.
개인정보 처리 문제는 AI 분야뿐 아니다. 상대적으로 전통적(?) 서비스라고 볼 수 있는 통신서비스 판매 과정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KT 유통부문 자회사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고객정보를 무단으로 수집·조회해 영업과 마케팅에 활용할 것을 권장했다. 당시 회사 측에선 개별 대리점 점장들이 공유한 영업 사례일 뿐이라며 본사 차원의 영업 방식 강요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보도 이후 수많은 전·현직 KT M&S 직원들이 회사가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활용해 영업방식에 사용할 것을 강요했다고 제보해왔다.
회사 측 해명과는 배치되는 증거 자료들도 확인됐다. KT는 정기적으로 유통망의 개인정보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있어 개인정보 무단 수집 및 활용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본사에서 점검을 나오기 전 지사별 메신저 단체방에 시간 및 일자를 공지하는 등 충분한 대비 시간을 준 정황도 확인됐다. 방대한 고객 정보를 갖고 있는 이동통신사가 고객의 개인정보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기업의 데이터 활용 가능성 및 편의성은 높아졌다. 다양한 방면으로 수집되는 개인정보, 즉 데이터의 활발한 활용은 산업 발전과 직결된다. 그러나 산업 발전을 이유로 기업의 부실한 개인정보보호 실태를 도외시해선 안 된다. 산업계의 데이터 활용 역동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정보주체가 실질적이고 자발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수집 동의 및 활용과 관련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