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반영 최대 관심사 준법감시위 “실효성 없음” 판단
준법감시 방안·위법행위 감시체계 확립 등 보완 지적
사카린밀수, 불법정치자금, 경영권 불법승계 등 논란
경영승계 의혹 재판은 이제 시작···형량 더 늘어날수도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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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국정농단 뇌물 공여, 삼성 자금 횡령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으며 법정 구속됐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 제도가 감형 요소로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실형을 피하진 못했다. 재판부는 준법위가 실효성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를 양형에 반영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과거 삼성그룹의 정경유착을 지적하며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이례적인 소회까지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18일 오후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열고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기까지 353일 형기를 살았던 이 부회장은 앞으로 약 1년6개월의 수감 생활을 더 해야 한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에게는 각각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각각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목이 집중됐던 준법위를 감형 요소에서 배제한 이유에 대해 “앞으로 발생가능한 새로운 행동에 대해 선제적 감시활동까지는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컨트롤 타워를 운영하는 준법감시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있지 않은 점 ▲준법위와 협약을 체결한 7개사 이외 회사에서 발생할 위법행위 감시체계가 확립되지 못한 점 ▲과거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한 허위 계약을 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한 점 등을 그 이유로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양형사유를 밝히며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자 자랑스러운 글로벌 혁신 기업인 삼성이 이와 같이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반복하여 범죄 연루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재판부 지적처럼 삼성이 정치권력과 유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삼성그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90억원에 가까운 뇌물을 줬다는 사실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정됐다.

이 전 대통령이 받았다고 확정된 뇌물액 93억여원 가운데 89억원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받은 돈이었다. 삼성은 2007년 11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이 전 대통령이 미국의 로펌 에이킨 검프의 법률자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자문료를 제공했다. 또 2008년 4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다스의 140억원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 김경준 전 BBK 대표를 상대로 낸 소송 비용을 대납했다.

2007년은 삼성이 비자금 관련 특검 수사를 앞둔 시점이었고, 삼성 승계의 핵심인 금산분리법 개정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태였다. 검찰은 삼성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 전 대통령에게 소송비를 대준 것은 후일 이건희 회장 사면과 이 회장 일가에게 유리한 방향의 금산분리법 개정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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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과거 故이병철 창업주 당시의 사카린 밀수사건, 故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당시의 세금포탈 및 불법정치자금 제공, 비자금 조성, 로비 의혹 등도 받은 바 있다. 이 회장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문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 부분 무죄를 선고받고 조세포탈 부분에만 유죄가 확정됐다. 이명박 정부는 대법원 확정판결 불과 4개월 만에 이 회장을 특별사면·복권했다.

사카린 밀수 사건은 1966년 5월 삼성그룹의 계열사 한국비료공업이 일본 미쓰이 그룹과 공모해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을 건설 자재로 꾸며 들여와 판매하려고 했다가 들통난 밀수 사건이다. 부산세관은 같은 해 6월 10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000만원을 부과했다.

이병철 창업주는 이 사건으로 회장직에서 사퇴했는데 삼성그룹 회장 직을 대행했던 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1993년 발간한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을 통해 ‘사카린 밀수사건은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싸고 돈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삼성의 정경유착 의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회계부정 사건 역시 박근혜 정부와 연결돼 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은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이 이 부회장을 위한 승계작업의 일환으로서, 그룹 총수를 보좌하는 미래전략실이 주도해 추진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사건을 추적했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이 주도해 경영권 승계 목적으로 한 합병을 추진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에게 승계작업 지원을 요구하며 그 대가로 뇌물을 공여했다는 사실관계를 확정했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수년간 계획한 승계계획안 ‘프로젝트-G’를 핵심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검찰이 11개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이 사건은 이제 1심이 시작됐다. 지난 14일 예정됐던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연기됐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 부회장의 형량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혐의 전부를 부인하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는 “통상적인 경영활동”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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