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통과, 제도화 눈앞
사망 1명 이상 발생 시 대표자 징역·벌금
“업체마다 수백 개 현장 운영···일일이 챙기기 어려워 ”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두고 건설업계가 술렁이는 분위기다. 건설업계는 중대재해법 시행될 경우 수백 개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될 수 있고, 기업과 최고경영자(CEO)가 범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며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은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 이어 8일 법사위 전체회의, 본회의 의결을 거쳐 일사천리로 입법 절차가 완료됐다. 중대재해법은 산재나 사고로 사망자가 나오면 안전조치를 미흡하게 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직업상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할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인이나 기관도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중대재해법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자 건설업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면책규정이 없는 탓에 수많은 건설사의 경영책임자가 언제 구속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순위 10위권 내 대형 건설사 중 HDC현대산업개발 외 나머지 9개사의 현장에선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될 때 사망사고가 일어났다면 최악의 경우 대형사의 CEO 9명 모두 징역형의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해외현장을 포함해 많게는 수백 개의 건설현장을 보유하고 있는 건설사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안전 문제를 일일이 챙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2019년도 시공능력평가10위 이내 업체의 건설 현장 수가 업체당 270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67개의 해외현장도 포함돼 있다. 아파트의 경우 대형업체는 아파트 현장이 상시 50개 정도 가동되는데, 1개 현장당 하루에 최소 500~1000명에 달하는 근로자가 투입된다. 전체적으로는 하루에 2만5000~5만명의 근로자가 투입되는 셈이다. 산업현장의 사망사고는 대부분 과실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의범에 부과하는 형벌 방식인 1년 이상 징역과 같은 하한형 형벌을 가하도록 한 것은 과도하다는 게 건설업계의 중론이다.
경영책임자 처벌과 더불어 ‘징벌적 손해배상’도 우려하는 부분이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재해를 발생시켰을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의 안전 조치 의무 대상에는 실질적 관리 아래에 있는 하청 노동자도 포함된다. 하청 노동자가 중대 재해를 당할 경우 원청 사업주 등도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로 인해 중소 건설사들의 타격이 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안전관리 의무를 다했음에도, 예기치 못한 중대재해로 폐업까지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법인 벌금,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제, 대표자 처벌까지 4중 처벌을 하도록 돼있는데 이 부분들은 중소기업이 지키기엔 너무 가혹하다”며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전문경영인을 둘 수 없고 거의 99%의 대표가 오너인데 이들을 처벌하게 되면 사고가 나도 수습할 수 없고, 기업은 도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