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발생시 당사자 과실보다 기업의 시스템에 더 큰 책임감을 묻는 법안
입장반영 실패한 재계 허탈감···“안전준수이행 시 면책가능한 법보완 절실”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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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잡음이 무성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원안보다 후퇴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당사자인 재계에서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무엇보다 안전수칙을 준수하더라도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사업주가 책임을 저야 하는 까닭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감지되는 실정이다.

중대재해법은 대형 산재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고 당사자의 과실뿐 아니라 해당 기업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무게를 둔 법이다. 회사 내부의 위험관리가 잘 지켜지지 않거나 안전불감증이 팽배한 조직문화가 사고의 원인이란 시각이다. 이에 사업주 또는 전문경영인의 처벌을 강화함으로서 이 같은 폐단을 막고자 신설된 법이다.

향후 산재 발생 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법인 및 기관에게는 이와 별개로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법 적용이 3년간 유예되며,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초 원안에는 담당 공무원에 대한 징계도 명시됐지만 여야 합의과정에서 제외됐다.

이처럼 원안보다 후퇴된 탓에 노동계는 반발했다. 특히 전체 사업체 중 80%가 5인 미만이며, 산재 사망사고의 24%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무원 책임을 묻는 부분을 제외시킴에 따라 행정편의주의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여권에서는 부족한 부분을 추후 보완할 것이라며 여야 합의를 통해 법안이 통과됐음에 의미를 뒀다.

정치권과 노동계 반응이 엇갈린 가운데, 또 다른 이해당사자인 기업들은 허탈해했다. 그간 요구해 온 입장들이 철저히 외면됐다는 게 재계 반응이다. 사전예방이 아닌 벌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춰진 법안이라며, 도입이 불가피하다면 형량하향 및 정부가 권고한 안전사항을 충실히 이행했을 경우 형을 면제받는 예외조항 도입을 요구했으나, 반영되진 않았다.

진통 속에서 법안이 통과되면서 산재사고 빈도가 높았던 업계들도 비상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법안이 입법 추진되는 단계서부터 기업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 피력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해당 법안의 공표를 준비하는 작업을 병행한다. 이번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무엇을 대비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업무 특성 상 작업환경이 다른 업종보다 위험한 것이 사실이지만, 기존 안전설비를 점검하고 보강하는 통상적 작업만을 진행 중”이라면서 “직원들에 안전교육을 보다 강화하고 앞서 책정한 안전관련 예산을 성실히 집행하는 데 우선 집중할 계획이지만, 모든 사고가 부지불식간 이뤄지는 탓에 그저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지적했다.

조선업계도 비슷했다. 특히 조선소 내 다수의 사람들이 근무하는 만큼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뿐이다. 컨테이너 선적·하역 중 이따금씩 사고가 발생하는 물류업계서도 이번 법안 통과를 예의주시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대형 크레인과 무전을 통해 업무가 이뤄지다보니 부주의에 따른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면서 “추가 인력을 투입해 복수의 근무자들이 서로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등을 논의 중이다”고 알렸다.

산재 빈도가 높은 건설현장의 경우 비상이 걸렸다. 이번 법안 통과에 거세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지난 8일 입장문을 통해 “한쪽에 치우친 여론에 기댄 입법”이라 질타하며 “상식과도 거리가 먼 법안을 질주에 가깝게 밀어붙였다”고 쏘아붙였다. 협회 측은 “하햔형 징역형이 아닌 상한형 방식으로 수정돼야 하며, 사고예방에 노력을 기울였을면 면책하는 조항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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