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모에게 아동학대치사죄만 적용···‘미필적 고의’ 있다면 살인죄도 가능
전문가 단체들도 ‘공소장변경’ 주장···검찰, 사망원인 재감정 돌입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의 양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강력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의사, 변호사단체는 양부모에게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냈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0만명이 넘게 동의를 했다. 양모를 아동학대치사로, 양부를 유기와 방임 혐의로 기소한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할지 주목된다.
6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정우)는 정인이의 양모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양부를 ‘방임과 방조’ 등의 혐의로 각각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지는 았다. 살인의 고의를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인양은 등 쪽에 가해진 충격으로 복부에 손상을 입고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검찰은 충격이 가해진 원인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살인죄 기소가 충분하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명백한 살인의 고의가 없더라도 피고인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면 살인 혐의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살인죄의 양형기준은 10~16년으로 아동학대치사죄(4~7년)보다 높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단체는 양부모를 살인죄로 기소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날 검찰에 전달했다. 이들은 의견서에 살인죄 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기소돼야 하는 이유를 의학적 논문에 근거해 기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도 언론에 보도된 피해와 증거자료만 보더라도 살인죄 적용에 무리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살인 사건에서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상대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인식이 있으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아동학대치사죄와 살인죄를 병기해 기소할 수 있는데도 기소 재량권을 가진 검찰이 범죄 입증 편의만을 이유로 아동학대치사죄만을 적용했다는 비판도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미필적 고의가 의심되는 사건에서 검찰이 아동학대치사죄 만으로 기소한 것은 기소편의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입양모를 기소한 이후 부검의 3명에게 정인이에 대한 재감정을 의뢰했다. 검찰이 양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형사소송법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법원의 허가를 얻어 공소사실 또는 적용 법조를 추가, 철회 또는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은 오는 1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다. 양부모를 엄벌해달라는 시민들의 진정서 600여건이 법원에 접수된 상태다. 재판부는 유·무죄 판단전까지 진정서를 보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