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저탄소 전기’ 사고파는 제3자 PPA·녹색프리미엄 등 한국형 RE100
재생에너지 대중화 전기 마련 평가···‘한전 판매 독점’ 예외 두는 법개정 필요 지적도
[시사저널e=이승욱 기자] 정부가 ‘한국형 RE100(K-RE100)’를 본격 도입하기로 하면서 재생에너지 소비를 위한 다각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재생에너지 대중화를 획기적으로 열기 위해서는 국내 전력 판매 부문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국전력(이하 한전)에 대한 예외적인 법 제도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형 RE100’ 도입, ‘재생에너지 소비자 선택권 확대’ 평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기업 등 전기소비자들이 전력거래계약을 맺을 수 있는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등 한국형 RE100 제도 추진 방안을 담은 전기사업법 개정 시행령이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정부의 한국형 RE100 제도 도입에 대해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전이 발전사업자와 전기소비자 사이를 중개한다는 단서가 달리기는 하지만 전기소비자의 재생에너지 선택권을 보장하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한국형 RE100은 전력 구매 과정에서 소비자의 다양성을 존중해준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판매, 발전, 송‧배전 등 전기사업의 겸업이 불가능하도록 한 현행 전기사업법에 따라 그동안 전기소비자는 전력 발전을 위한 에너지원을 고려하지 않은채 한전이 일방적으로 제공한 전기를 불가피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한국형 RE100 제도 도입에 따라 앞으로 전기소비자는 자가 발전을 통한 재생에너지 조달 방식 뿐만 아니라 제3자 PPA 등 다양한 방식으로 태양광, 풍력, 수력, 해양, 지열, 바이오 에너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한국형 RE100의 글로벌 모델인 RE100은 기업이 사용 전력량의 100%를 조달하겠다는 캠페인이다.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의 목표 연도는 오는 2050년까지로, 현재 구글과 애플 등 약 250여개 글로벌 다국적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RE100 인증을 위한 국내 법‧제도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9월 전기산업 주무부처인 산업자원통상부는 그린뉴딜 정책간담회를 통해 ‘국내 RE100 이행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한국형 RE100 제도 도입 방안 등을 담은 전기사업법 시행령은 당시 정책간담회에서 제시한 지원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한국형 RE100은 연간 전기사용량이 많은 100GWh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참여를 권고하는 RE100과 달리, 전기사용량 기준과 상관없이 재생에너지를 구매하려는 산업용, 일반용 전기소비자도 한국에너지공단 등록 절차를 거친 후 활용할 수 있다.
◆ 제3자 PPA 외 ‘녹색프리미엄’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자-전기소비자 간극 줄어
재생에너지 보급 활성화를 주장하는 환경단체와 업계가 제도 도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제3자 PPA 외에도 한국형 RE100을 위한 ‘녹색프리미엄’ e도입도 눈에 띈다.
녹색프리미엄은 기존 석탄 및 원자력 발전에 의존해 생산한 전력과 달리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구매하는 기업과 개인 등 전기소비자가 전기요금과는 별개로 납부하는 자발적 금원이다. 기업 등이 녹색프리미엄 납부액에 따라 ‘재생에너지 사용 확인서’를 받으면 이를 RE100 인증에 활용할 수 있다.
한전은 다음달 5일까지 ‘2021년 녹색프리미엄’ 입찰 공고를 내고, 참가자들의 신청을 받아, 같은달 8일 최종 낙찰물량과 가격을 확정한다. 앞서 지난달 21일 재생에너지 사용 심의위원회는 올해 녹색프리미엄 판매물량과 입찰 하한가, 낙찰기준 등을 확정했다.
전기소비자가 녹색프리미엄을 매월 납부하면 한국전력이 분기별로 재생에너지 사용 확인서를 발행해주고, 전기소비자는 RE100 인증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 납부한 녹색프리미엄은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시행령 45조와 신재생에너지 설비 지원 등에 관한 규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에너지공단이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투자사업 재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재생에너지를 전기소비자가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그동안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를 이행하는 발전사업자만 살 수 있던 REC(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도 올해부터는 기업 등 전기소비자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구매한 REC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인증받을 수 있다.
한국형 RE100은 재생에너지 분야의 보급과 함께 한전이 그동안 독점적으로 누렸던 전력 판매 사업 분야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법이 제정된 이후 전력시장 구조 개편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다.
전력판매를 독점하는 한전이 발전자회사들이 석탄화력과 원자력, LNG 등 혼재된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기를 공급받아 판매해왔다. 이에 따라 전기소비자가 친환경, 저탄소 전기를 사용하려고 해도 선택권이 없었다.
◆ “재생에너지 판매, 한전 독점권 예외 적용해야” 지적도···전기사업법 개정안 국회 계류 중
한국형 RE100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재생에너지 선택권이 대폭 늘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판매 사업에서는 한전의 독점적 지위를 예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9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내 발전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지난 2011년 2%에서 2019년 6%로 소폭 증가했다. 이 기간 석탄화력은 41%에서 40%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따라 기후솔루션 등 환경단체들은 한전의 중개 없이 사용할 시장에서 자유롭게 재생에너지 PPA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경락 기후솔루션 이사는 “자유로운 재생에너지 PPA 계약을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는 장기 고정계약을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고 구매자도 한전의 전기요금 상승이라는 위험부담을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일각에서는 배출권거래제 규제 강화, 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과세 강화 등 발전량 비중이 큰 석탄화력 발전의 발전단가에 비용이 반영되는 시장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현재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판매에서 한전의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는 관련 법률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으로 입법화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7월 김성환 의원이 대표발의한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행 전력시장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재생에너지 전기공급사업을 겸업이 가능한 전기신산업의 한 종류로 추가하는 안이 담겼다.
국회 산자중기위는 검토보고서에서 일부 세부 사안의 보완 필요성을 제기하면서도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재생에너지에 한해 발전‧판매 겸업을 허용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법률이 개정되면 “에너지 프로슈머 등 에너지 신산업이 활성화되고 전기사용자의 선택권이 넓어지는 효가가 기대”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