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세 늘려 부담 키웠지만 다주택자 매도 대신 증여 택해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정부가 주택시장에 매물을 출현시키기 위해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대폭 늘렸지만 매도 대신 증여를 택하고 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다주택자가 강화된 양도소득세를 피하기 위해 집을 내놓는 대신 배우자나 자녀에게 증여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다주택자와 법인에 대한 취득세율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중과세율도 대폭 높이는 등 여러 규제책으로 정부가 다주택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시장에 매물이 출현해 씨 마른 주택시장에서 거래가능 매물이 늘어날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나 다주택자들은 매물 던지기 대신 증여를 택하고 있다.

3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1~11월까지 전국 증여거래량은 총 8만1968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기간 증여 거래량인 5만8117건보다 41%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증여는 주택시장에서 주목도가 높은 지역에서 급증했다. 세종시의 올해 아파트 증여 거래량은 995건으로 작년 222건보다 무려 3.4배 급증했다. 세종시 다음으로는 서울시에서 증여가 많았다. 지난해 1만1187건에서 올해는 2만1508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앞서 정부는 7·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투기성 수요에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물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현실화했다. 다주택자와 법인에 대한 취득세율을 최대 12%까지 끌어올리고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중과세율을 최고 6.0%로 높인 것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다주택자가 매도 대신 증여를 택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증여취득세율도 높였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중순부터는 증여재산의 취득세율을 현행 3.5%에서 최고 12%까지 인상된 상태다. 2주택 이상 보유자가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에게 주택을 증여하면 해당 주택이 조정대상지역내 3억원 이상일 경우 취득세율이 12% 적용된다.

그럼에도 증여거래가 늘어난 것은 여전히 시장에서는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KB금융그룹 경영연구소가 지난 29일 공인중개사 등 부동산시장 관계자 6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은 집값이 내년에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름폭은 1∼3%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가장 많았다. 이와 같은 까닭에 시장에서는 다주택자들이 매도 대신 증여를 택하는 사례는 내년 상반기에도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해당 2021 부동산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보유세율이 점차 높아지자 상당수 다주택자들은 주택 처분을 위해 매각이 아닌 증여를 선택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증여세 면제 한도가 크지 않지만 이참에 타인에게 매각하기보다 자녀에게 주택을 물려주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어 “종부세 등 보유세 인상에 대한 정책 시그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증여 건수는 2018년 이래 꾸준히 증가했다”며 “현재 다주택자 양도세 부담이 매우 높은 수준이기에 실제 매도 물량 증가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추가적 정책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보유세는 물론 증여취득세율을 높였는데도 불구하고 증여 거래량이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해 정부는 시장에 매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다른 거래세 인하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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