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귀 닫은 정부·여당과 방역실패 바라는 야당 정쟁만 일삼아
마스크 쓴 개인이 지켜낸 대한민국···경제여력 바닥나고 있어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유례없는 한 해였다.
살아남는 게 강한 자라는 말도 옛말이 됐다. 적어도 올해는 운이 좋았기에 살아남았다는 말이 보다 어울렸다. 오늘은 그랬던 2020년의 마지막이다.
작년 이맘때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한 괴질은 해를 넘기며 전 세계로 뻗어갔다. 설 연휴를 앞두고 국내에도 전파된 바이러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란 새 이름도 얻었다. 강한 전파력이 지닌 코로나19의 등장은 우리 삶 곳곳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마스크는 필수였고, 불필요한 외출을 삼갔다. 확진자 증가폭이 거셀수록 출입의 제한이 생겼고, 불특정 다수를 나도 모르게 경계해야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움직임은 줄어들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거리에 나서는 이들이 감소했고, 자연스레 소비패턴도 변화했다.
갑작스런 변화는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일부 업종은 활황을 띠기도 했으나,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였을 뿐이다. 자영업 비율이 높은 특수성이 더해지면서 소비위축에 따른 피해는 극심했다. 다행인 것은 미국·유럽 등에 비해 바이러스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가 높았고, 덕분에 방역수칙 준수가 잘 이뤄졌다. 미국·유럽 등에 비해 피해가 덜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곳곳이 곪게 됐다.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용객이 급감하면서 항공사들은 사실 상 개점휴업인 상태다. 이들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조종사·승무원들과 공항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위태해졌다. 사람들의 이동이 줄어들고, 항공기가 멈추면서 유류소비가 감소하자 정유업계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게 됐다. 유관산업의 전반적인 침체가 불가피했다. 다른 분야도 비슷했다.
문제는 비단 2020년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갑작스레 출현한 바이러스에 대항해 ‘버티는 한 해’가 됐지만, 내년에도 여력이 남아 있을지가 의문이다. 특히 자영업자의 폐업이 잇따르면서 건물소유주의 자금난과 이에 따른 대출금 상환압박이 더해질 것으로 염려된다. 금융권이 흔들리면 국가경제 전반이 흔들리게 된 다는 점은 이미 1997년 IMF 경제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학습한 바 있다. 그래서 더욱 우려스럽다.
결과적으로 국가적인 방역활동은 단순히 감염된 이들의 치료와 생명을 지키고, 이들로부터 감염되지 않은 이들을 지키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전체적인 국가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최전선인 셈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 과정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됐다는 점이다. 피폐해진 개인들이 정치권의 선동에 동참하면서 코로나보다 더 큰 분열의 위기가 한국 사회를 짓누른 모양새다.
차기 정권을 획득하려는 야권에서는 정부의 방역활동이 실패하길 바라는 듯한 태도로 일관한다. 초당적인 협력은 사전 속에서나 찾을 법한 단어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야권의 지적 모두가 딴지는 아니었음에도, 정부·여당은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듯 외부의 지적에 눈과 귀를 닫고 올곧은 자세로 상대를 헐뜯고 있다. 해가 바뀌어도 코로나19가 여전히 활개를 칠 것이 자명한 것처럼, 이들의 반목 역시 여전할 것이다.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면 으레 그렇듯, 본질이 퇴색됐다. 왜 국가가 적극적 방역에 나서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심이 사라졌다. 단순히 확진자를 격리해 추가적인 감염위험을 낮추려는 데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혼란을 막고 경제적 피해를 줄이는 것 역시 적극적 방역활동의 이유다. 이를 행하는 정부·여당도, 상대의 무능만을 부각시키려는 야권도 모두 그 본질을 흐려놓는 정쟁에만 몰두한다.
이처럼 특수한 상황 속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야만 했던 기업들의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 경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된 연쇄부실의 그림자가 금융권을 향하고 있다. 기업·금융권의 도산이 발생하면 연쇄적인 부도우려가 재현될 수 있고, 개인의 일자리가 위협받으며 재차 밑바닥으로 부담이 전가되는 악순환이 연속될 수 있다. 이를 막는 최선은 결국 코로나19 극복이다.
정부가 선보인 방역수칙이 모든 분야에서 긍정적인 역할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는 곧 야권의 지적이 모두 틀리지 않았음을 방증하며, 동시에 정부의 방안들이 모두 틀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권이 상호보완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코로나19 극복은 보다 용이해질 수 있다. 어쩌면 정쟁에 따른 혼란이 극복을 지체시키는 일인지 모른다.
누군가 그랬다. 국민은 자신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선택한다고. 틀렸다.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치적 지도자가 전무한 모습이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함으로써 이른바 선진·강대국들에 비해 나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잠시의 성과를 자화자찬한 정부·여당이 아닌, 이를 헐뜯기만 한 야권이 아닌, K방역의 주역은 마스크를 벗지 않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시민들이었다. 위기가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상황에서,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치권의 합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