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누계적자 5조 넘어서···실적방어 전략 펼쳤지만 한계도 극명히 드러나
‘증산경쟁·팬데믹’ 유가 회복 더뎌···재확산·내수침체 더해져 정유업계 비명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정유업계에게 금년은 역대 최악의 해였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빅4’ 실익도 대폭 후퇴했다. 각 업체들이 나름의 실적방어 전략을 구사했음에도 업계 전반에 걸쳐 5조원 이상의 적자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기저효과 등으로 인해 내년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나,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국신용평가는 SK이노베이션과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에너지·SK인천석유화학 그리고 에쓰오일 등의 신용등급을 당초 ‘AA+’에서 ‘AA’ 등급으로 하향조정했다. 대규모 영업적자 이후 실적개선이 지연되고 있으며, 영업실적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잔존함을 등급하향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현금창출력 약화에 따른 재무부담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 등의 등급은 유지됐다. 실적방어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한 관계자는 “올 1분기 4사의 실적이 나란히 후퇴했으나, 2·3분기는 다소 달랐다”면서 “비록 미미한 수치지만 현대오일뱅크가 2·3분기 영업흑자를 나타냈으며 GS칼텍스도 3분기 영업이익을 실현했지만,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 등의 적자는 지속됐다”고 소개했다.
올 3분기까지 SK이노베이션의 누계 영업손실은 2조2439억원(연결기준)이다. 이 밖에도 △GS칼텍스 9680억원 △현대오일뱅크 5147억원 △에쓰오일 1조1808억원 등의 적자상황을 유지 중이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등의 경우 소폭 흑자를 나타낸 분기도 있었지만, 올 1분기 적자폭을 일부 줄였을 뿐 여전히 흑자기조로 돌아서진 못한 상황이다.
정유업계의 이 같은 부침은 올 초부터 이어져왔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부터 산유국 간 자존심 다툼이 돌연 증산경쟁으로 번진 것이 단초가 됐다. 비정상적인 공급량 확대로 국제유가가 폭락을 거듭했다. 코로나19가 발발하면서 수요가 급감하게 되자, 국제유가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자연히 주요 정유사들의 마진율도 더욱 하락하게 됐다.
국내의 경우 올 상반기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한 이후, 점차 안정권에 접어들며 수요가 정상화됐지만, 국제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브라질 등으로 대표되는 북·남미와 호주·아프리카 등에 이르기까지 확진자가 속출했다. 산유국들이 감산에 합의했지만, 이미 원유수요가 급감한 상태여서 국제유가의 회복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국제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마진율이 일부 개선되는 듯 했으나, 이번엔 국내 코로나19 사정이 재차 악화됐다. 지난달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발령 후 매주 추가적인 규제책이 신설되며 방역조치가 강화되면서 전체적인 이동량 역시 급감했다. 주유소를 찾는 발길도 줄어들었고, 차량용 연료와 함께 정유사의 대표적인 매출원이던 항공유 수요마저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음으로서 연말 정유업계의 고충이 심화됐다.
문제는 내년이다. 일각에서는 정유업계가 속칭 ‘기름집’이라 불리는 고수익 분야였던 탓에 버틸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구조적인 한계로 다른 사업군에 비해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여파로 내년 상반기까지 천문학적 적자가 예상됨에 따라 개별 기업의 여력도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팽배해지는 양상이다.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최근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등장하면서 글로벌 수요의 회복이 더디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추가적인 반등 없이 국제유가가 정체하거나 도리어 감소할 경우 실익개선이 힘들어진다. 국내 수요가 반등할 경우 소폭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현재로선 그 시점을 명확하게 예측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당국의 백신 보급계획이 예고됐지만 이 역시 집단방역에 이르기까지 상당시간이 소요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주요 정유사들의 공장가동률은 간신히 70%선을 지키는 모양새”라면서 “고정비 감축을 통한 실익개선에는 한계가 있고, 전방산업의 약세와 정유업 전체적인 구조적 한계 등이 코로나 시국과 맞물리며 상당한 고충이 이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 답했다.
이어 그는 “업계 공통적으로 고수익 유종의 판매증대를 추진하고 각 기업별로 사업다각화를 통한 극복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실효성이 크진 않다”면서 “외부적 요인에 따른 부침이 커, 현재로서는 코로나19가 조속히 진정되기를 바랄 뿐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