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가입자와 새 가입자의 사회적 합의도 부족
구체적인 설계 부재로 설득력 떨어져
[시사저널e=변소인 기자]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법, 재정 확보방안 등 핵심은 빠져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100만명이 넘는 이들을 가입시켜야 하지만 기존 가입자와 새로운 가입 대상자 모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 23일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예술인, 프리랜서 등 특수고용직, 배달기사 등 플랫폼 종사자 외에도 일정 소득 이상의 근로자는 모두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우려 섞인 반응이 많다.
당장 내년부터 특고 중에서도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화물차주 등 14개 직종이 고용보험에 의무 가입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이들 직종에는 약 106만∼133만명 속해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특고의 경우 고용보험 의무 가입에 대해서는 불편한 기색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문 조사기관 ‘모노리서치’를 통해 특고 2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고 고용보험 적용에 대한 종사자 의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무 가입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은 53.8%, 반대는 46.2%였다. 절반 가까이는 의무 가입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이다.
해당 조사는 특고 4개 직종(보험설계사 50명, 택배기사 63명, 골프장 캐디 70명, 가전제품 설치기사 66명)을 대상으로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이들은 고용보험 가입을 원치 않는 이유로 ‘실업 위험이 거의 없음’(42.1%)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소득이 노출될 우려’(31.4%), ‘고용보험료 부담’(20.7%) 순이었다.
특히 보험설계사의 경우 보험사와 보험설계사간 의견을 합치시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018년에도 보험설계사의 고용보험 의무 가입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고용보험료를 같이 분담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의견이 많다. 오히려 실적주의가 강화돼 실적이 좋지 않은 이들의 고용보험료를 내주기 전에 대규모 해고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전 국민 고용보험 원래 취지에 어긋나게 된다. 실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소득이 공개됨에 따라 세금이 올라가는 것으로 간주해 원치 않다는 보험설계사도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대상자들은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방향만 제시하는 것 외에 합의나 논의를 해서라도 세부적인 예시를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저 의무 가입시키겠다는 것만으로는 기존 가입자도, 새로운 가입자에게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영일 정치평론가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행을 위해 급히 서두리기 보다는 적정한 비용 부담에 대한 국민의 동의가 우선돼야 한다”며 “대략적인 형태로라도 설계가 있어야 전문가, 관료, 의회, 시민사회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용보험기금 확보 방안도 문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가 실업자의 구직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고용보험기금으로 지급하는 구직급여 지급액은 지난달 913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4%(3206억원)가 늘었다. 올해 1~11월까지 누적 구직급여 지급액은 모두 10조8000억원으로 이미 지난 한 해 지급액인 8조1000억원을 넘어섰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누적 적립금은 매년 적자다. 지난해 말 7조3532억원 규모에서 올해 말 4조894억원으로 감소했다. 내년에도 3조원대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직군을 포함하게 되면 기금이 더 많이 소모될 가능성이 있다. 구직급여 지급액이 늘어나면 기금이 줄어들고 다른 가입자들을 다 보호하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기금 확보에 대한 내용이 이번 로드맵에서 빠졌다. 정부는 일정 기간 운영해 본 뒤 기금 유지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