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중 피살’ 故임세원 교수 유족 행정소송 승소
동료에게 “도망가·신고해”···스스로 공격 대상 돼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를 가진 환자 진료 중 흉기에 찔려 숨진 의사를 ‘생명 등에 대한 구조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고인이 동료들을 대피시키고 신고를 지시하면서 공격의 대상자가 됐다며, 법에서 정한 ‘직접적·적극적 구조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이상훈 부장판사)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유족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의사자 지정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고 27일 밝혔다.
임 교수는 지난 2018년 12월 31일 자신이 치료하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유족은 ‘망인이 가해자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 다른 직원들에 대한 구조행위를 하던 중 사망했다’며 의사자로 인정해 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신청했으나, 보건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의 쟁점은 다른 직원들을 대피시킨 임 교수의 행위가 ‘직접적·적극적 구조행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사상자법)에 따르면, 구조행위는 ‘자신의 생명 또는 신체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급박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기 위한 직접적·적극적 행위’를 의미한다. 강도·절도·폭행·납치 등 범죄행위를 제지하거나 그 범인을 체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구조행위를 한때 의사상자법이 적용된다.
재판부는 임 교수가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제지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 또는 신체상의 위험이 가중되는 것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했기 때문에 직접적·적극적 행위인 구조행위를 한 사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가해자의 상태를 보면 병원 누구든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었는데 망인은 동료에게 ‘도망가’라고 말하고, 또 다른 동료에게 ‘신고해, 도망가’라고 말했다”며 “이는 가해자의 주의를 끌어 자신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한 행위이자 동료들이 적절히 대비할 수 있도록 타인의 생명·신체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가해자는 30세의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었고,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달리기에 용이한 운동화를 착용했다”며 “망인은 스스로 공격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료들에게 도망가라고 말하거나 신고하라고 고지 한 점, 가해자의 주의를 끌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 상황임을 알리는 것은 가해자의 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효율적인 구조행위로 보이는 점, 피해를 당하기까지 약 11초에 불과해 다른 방식의 구조행위를 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망인은 기대 가능한 최선의 행동으로서 직접적·적극적 행위로 (구조행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설령 망인이 직접적·적극적 구조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는 통상적인 구조행위에 해당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망인이 구조행위를 한 직후 범행을 당해 직접적·적극적 구조행위로 나아가지 못했을 뿐 이와 밀접한 행위를 하는 과정에 사망한 경우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 판결 이후 보건복지부는 의사상자 심사위원회를 열고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했다. 의사상자가 되면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 장제보호, 의료급여 등의 예우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