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인력 공백 ‘현실적 고려’ 구제 가능성···정부, 사실상 입장 선회
의료계 “인턴 수급, 기존 의사 이탈과 연관”···“정부, 신속히 방법 모색해야”
반대 靑청원 5만명 넘어서···“재시험 결정 시 충분한 설득·설명 수반돼야”

대구 동구의 한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21일 동구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구 동구의 한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21일 동구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창원 기자]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재시험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재유행 속 의료 인력 부족 상황을 언급하며 재시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다.

이에 당장 대한의사협회 등은 반기는 분위기지만, 의대생에만 특혜를 부여해선 안 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 논란은 한층 고조되는 모습이다. 또한 이번 논란의 시발점이 공공의대 설립 문제였던 만큼 정부가 향후 협상을 위해서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가 의대생 국시 재시험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연일 900~1000명대로 발생하고 있고,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의료 인력 공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일 정세균 국무총리,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 등은 의료 인력 공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대생 국시 재시험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 총리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현실적인 여러 상황을 고려해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국시를 거부했던 의대생들의 구제 가능성을 언급했다.

앞서 올해 국시 응시생의 약 86%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7월 23일) 발표에 반발하며 국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공공의대를 설립해 2022년부터 10년간 총 4000명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해당 방안으로는 국민 의료비를 증가시키고, 의사 수준이 하락될 뿐이라는 논리였다. 아울러 이들은 정부가 국시 접수를 2차례 연기했음에도 끝내 국시 응시를 포기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최근까지도 ‘국시 재시험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진정세에 들어서지 못하면서 변화된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신규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병상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어렵게 병상을 확보하더라도 공공병원 등의 경우 의료진 부족으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1월부터 의료진은 휴식을 취할 수 없었고, 날씨마저 추워지며 사실상 탈진 상태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의료 인력이 충원되지 않을 경우 자칫 의료 시스템 전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한 관계자는 “대한의사협회에서는 2700명의 의료 인력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1차적인 문제”라며 “내년 인턴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미 지쳐있는 1년차, 2년차 등 의사들의 이탈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시 재시험 등을 통한 추가적인 의료 인력 투입이 없을 경우 내년 초부터 의료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라며 “이 문제는 정말로 현실적인 부분이다. 약 1년 동안 사활을 걸고 방역에 힘써왔던 의사들의 이탈에 ‘그냥 더 버텨달라’고 강요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의대생의 국시 재시험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더라도 본과 4학년 의대생들의 국가시험 응시는 진행해야 한다”며 “정부가 만약 의지를 갖고 있다면 빠르게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의대생들은 현재까지 별다른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 때문에 정부가 국시 재시험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의대생이 재차 거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대한전공의협회 등은 ‘국시 면제, 코로나19 방역 즉시 투입’ 등 주장도 제기된 바 있고, 공공의대 백지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민 여론도 엇갈리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 8일 재등장한 의대생 국시 재시험에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은 이날(17시 기준) 5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고 있다. 국시 재시험은 공정성에 어긋나는 특혜이고, 지난 일련의 과정에서 ‘타인의 목숨을 수단으로 여기는’ 행태가 드러난 만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주 골자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번 문제의 시작은 정부가 공공의대를 설립해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하자 의대생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라며 “의료전달, 수가체계 정상화 등 이들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도 분명히 맞는 주장이지만, 다수의 국민들 시선에는 코로나19를 명분으로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정부, 의대생, 의사협회 등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할지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해당 결정에 대해 어느 쪽에 대해서든 충분한 설득, 설명 등 과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일 오후 서울 중랑구 면목역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중랑구 면목역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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