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공공기관 360곳 중 222곳 ‘출장 사후 정산 제도 미도입’
국민권익위 “사규 정비해 출장비 부당수령 원천봉쇄 해야” 권고
공공기관 “업무 효율성 떨어져”···자체 감사 이유 들어 제도 도입 미뤄

[시사저널e=이승욱 기자]

사례1.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올해 5월 내부감사를 통해 전년도 출장비 다액 수령자 200명을 조사한 결과, 사무실 회식비 충당을 위해 허위 출장비를 수령하는 등 출장비를 마치 눈먼 쌈짓돈 같이 사용한 사례가 발견됐다. 당시 조사 결과 출장비를 부당하게 수령한 사례는 87건으로, 금액은 약 1800만원에 달했다. 당시 상급자가 허위 출장을 지시한 사례도 있었다.

사례2.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의원(국민의힘)이 지난 10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정감사를 앞두고 보도자료를 통해 LH 임직원들의 출장비 부당수령 의혹을 제기했다. 올해 1~8월 LH 임직원들이 경남 진주에 있는 본사로 출장을 한다며 신청한 출장 사례 중 68.3%인 2167건(약 2억3511만원)이 해당 직원의 본사 출입기록 없어 허위 출장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의 출장비 부당수령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등 정부부처가 허위 출장 등 부당수령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출장비 사후 정산 등 제도 마련을 거듭 요구하고 있지만 공공기관은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등으로 제도 개선을 주저하고 있다.

/ 표=이다인 디자이너
/ 표=이다인 디자이너

15일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국내 지정 공공기관 340곳 중 출장 정산 규정이 없는 공공기관은 222곳으로 61.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 10곳 중 6곳가량이 출장비를 사후 검증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다.

공공기관 유형별로는 기타공공기관 209곳 중 144곳(68.9%)이 출장 정산 규정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규정 미도입 비율로 따지면서 기타공공기관에 이어 준정부기관 58곳(61.1%), 공기업 20곳(55.6%)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준정부기관 중 위탁집행형 공공기관은 13곳 중 11곳이 출장 정산 규정을 두지 않아서 규정 미도입 비율은 84.6%에 달했다. 위탁집행형 공공기관 2곳만 출장 시 사후 정산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 이에 반해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은 82곳 중 58곳이 정산 규정을 마련하지 않아 미도입 비율이 57.3%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공기업의 경우 시장형 공공기관의 미도입 비율이 43.8%(16곳 중 7곳)으로, 준시장형 공기업 65%(20곳 중 13곳)보다 적어 상대적으로 임직원 출장하는 경우 사후 정산을 하도록 규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는 출장여부 확인이 어려운 점을 악용한 허위출장이나 출장비 과다 수령 등 부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출장 정산 규정을 사규에 도입하도록 요구해왔다.

앞서 국민권익위는 부패방지권익위법 제28조 등에 따라 지정 공공기관을 비롯해 지방공사와 공단 등 491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부패위험요인을 분석하는 부패영향평가 제도를 시행했다. △준수 △집행 △행정절차 △부패통제 등 4개 분야에서 12개 기준을 평가하는 이 제도를 통해 국민권익위는 공공기관의 사규 정비를 요구했다.

국민권익위는 공공기관 임직원이 근무지 외에 출장하는 경우 카드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첨부해 제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실제 출장 여부 확인이 가능한 교통비와 숙박비를 정산하는 방식으로 지정 공공기관 222곳과 지방공사‧공단 등 360개 공공기관에 대해 사규 정비를 권고했다.

/ 표=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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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가 공공기관에 대한 출장 사후 정산 제도 도입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출장 정산 사후 규정이 없다고 해서 모두 허위 출장 사례가 있는 기관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그동안 해외 출장 여비 논란이 벌어지고 국내에서도 출장비 지급 등과 관련 잡음이 들리면서 사후 정산 제도 도입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요청했지만 여전히 사규 도입을 미루는 기관이 많아 구체적으로 미도입 기관을 정해 제도 권고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공공기관에서는 출장 사후 정산이 개인 비용을 처리한 후 별도로 비용을 청구받아야 하는 등 업무 처리에서 번거로움이 발생하고, 현재 출장 규정을 통해서도 허위 출장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출장 정산 제도 도입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사규 변경 과정에서 직원들의 반발이 우려돼 미루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허위 출장 및 부정 수령 의혹을 받은 LH 관계자는 “본사 출입등록을 하지 않고 출입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본사 출장자의 출입기록 여부만으로) 기계적으로 부당수령을 의심하면서 오해가 있을 수 있다”면서 “(사후 정산 제도를 하지 않더라도) 감사실을 통해 출장비 지급을 모니터링하고 있고 부당수령이 있을 경우 지급된 출장비는 모두 환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공기업 자회사에서는 오히려 출장비 사후 정산을 폐지하려는 경우도 있다.  출장자의 숙박비 정산이 너무 번거롭고 실용성이 없다는 내부 의견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A자회사 노조는 자체 게시판을 통해 “코로나19로 해외 출장이 자주 있지는 않겠지만 해외 출장 시 숙박비 정산을 하지 않는 쪽으로 경영진과 협의했다”면서 “차후 국내 출장의 경우에도 사후 정산을 폐지하는 쪽으로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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