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양육비 미지급자의 형사고소 줄줄이 ‘무혐의’ 처분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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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시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검찰이 재차 판단했다. 검찰은 시위 구호가 의견 표명에 불과하고 사실적시가 아닌 점, 채무자가 시위의 원인을 제공한 점을 고려해 불기소 처분했다.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은 지난달 23일 명예훼손 및 협박 등 혐의로 피고소된 A씨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고 6일 밝혔다.

양육비 채무자인 B씨는 A씨가 지난 3월 6일부터 같은 달 14일까지 평택의 한 아파트 앞에서 ‘양육비 미지급자 OOO동 OOOO호 18년간의 밀린 양육비를 하루 속히 지급하라’는 보드판을 들고 시위하는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A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불기소 결정문에서 “피의자(A씨)가 보드판에 적시한 내용은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내용이고 ‘18년간 밀린 양육비를 하루 속히 지급하라’라는 내용은 의견 표명에 불과할 뿐 사실의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의사는 고소인(B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려는 데에 있기보다는 고소인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 지적을 촉구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적시한 내용 중에 고소인을 비하 내지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등의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며 “고소인이 양육비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피의자가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점 등을 고려하면 피의자가 고소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침해했다거나 이를 침해할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불기소 이유를 설명했다.

B씨는 ‘직장 앞에서 보드판을 든 사진을 보내왔다’며 A씨를 협박 혐의로도 고소했으나, 검찰은 “고소인의 문자에 대한 단순한 감정적인 대응 내지 일시적 분노의 표시에 불과한 것에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구체적 해약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을 공개하며 지급을 촉구하는 시위를 명예훼손을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수사기관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인천지방검찰청과 수원지방검찰청도 양육비 미지급자가 피해자를 고소한 사건을 모두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실한 사실을 말하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위법성이 조각된다.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며 채무자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구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1심에서 무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1심은 구씨의 행동이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요건인 비방할 요건이 부정돼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 사건에서 배심원 7명(예비 배심원 1명 제외)도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항소심은 구씨에게 적용된 법률조항의 대전제가 되는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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