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부산·신한은행, 잇따라 데이터·IT 전문가 영입···저축은행도 디지털 인재 확보 경쟁
기업은행, 최초로 본부장급에 외부 인사 선임···다양한 분야로 확대 전망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금융권에서 연공서열 등의 보수적 기업 문화가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은행권에서 순혈주의 타파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금융업 진출과 언택트 소비문화 확산 등으로 비대면 금융 서비스 경쟁이 심화되자 주요 은행들은 잇따라 디지털 조직의 수장으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 영입 인사들은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은행의 디지털 전문성을 높여주고 신규 혁신 사업의 속도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디지털 외 다른 분야에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은행도 나오고 있어 향후 은행권의 순혈주의 문화는 점차 얕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주요 은행들의 디지털 전담 조직 개편, 외부 인재 영입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NH농협은행은 지난 7월 신임 디지털금융부문장(CDO, 부행장)으로 이상래 전 삼성SDS 상무를 영입했다.
이 부행장은 1991년 삼성SDS에 입사해 솔루션컨설팅팀장, 데이터분석사업팀장, 디지털마케팅팀장 등을 지냈으며 금융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 데이터 관련 풍부한 실무경험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은행권에서도 순혈주의가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있는 농협은행에서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이 부행장의 합류는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부행장 영입 이전까지 농협은행 내 외부 출신 임원은 홍명종 준법감시인이 유일했다.
농협은행은 지난 달 말 디지털 부문 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 부행장이 영입된지 4개월만의 변화다. 농협은행은 현재 모바일뱅킹과 자산관리, 대출 등 8개 부문의 디지털 금융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 팀 조직 ‘셀’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며 운영 시스템도 정교화할 방침이다. 또한 마이데이터, 마이페이먼트 등 신사업 등을 고려해 디지털금융부문을 단계적으로 기능중심에서 고객별(개인·기업) 마케팅 체계로 전환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달 21일에는 NH스마트뱅킹과 인터넷뱅킹을 고객 중심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고객맞춤 서비스를 위해 애플리케이션 로그인시 예적금 만기, 우대혜택 등 개인화된 금융정보를 초기화면에서 제공하도록 했으며 농협카드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스마트뱅킹에서 카드 승인내역 조회 및 카드 신청 등이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지방은행인 BNK부산은행도 지난 10월 이주형 전 삼성카드 빅데이터마케팅팀(BMP) 팀장을 디지털금융본부장(상무)로 새롭게 영입했다. 부산은행 디지털금융본부장 자리는 지난 5월 한정욱 전 부행장보가 사임한 후 오랜 기간 공석으로 남아있었다. 빈대인 부산은행장 스스로가 부산은행 미래채널본부장으로 있으며 ‘썸뱅크’ 출시를 이끌어온 디지털 전문가기 때문에 적임자 물색에 큰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주형 상무는 한국IBM, AT커니, 씨티은행 등에서 근무했으며 2013년부터 지난 9월까지 삼성카드에서 전략기획, 프리미어마케팅, 빅데이터마케팅 등 사업을 이끌어왔다. 삼성카드의 ‘링크(LINK)’ 서비스 개발을 주도하는 등 빅데이터 부문에서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링크’는 고객들의 소비성향과 구매패턴, 비슷한 연령대의 선호도 등을 분석해 고객에게 음식점과 같은 가맹점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가장 최근에는 신한은행이 디지털혁신단을 신설하고 이를 이끌어나갈 외부 전문가 2인을 새롭게 영입했다. 디지털혁신단은 은행장 직속의 혁신 추진 조직으로 AI Unit(구 AI통합센터)과 MyData Unit(마이데이터 사업 전담), Data Unit(구 빅데이터센터), 디지털R&D센터 등 네 개의 조직으로 구성된다.
혁신단의 리더로 영입된 이들은 김혜주 전 KT 상무와 김준환 전 SK주식회사 C&C 상무다. 김혜주 상무는 마이데이터 사업을, 김준환 상무는 Data Unit을 총괄할 예정이다. 김혜주 상무는 서울대에서 통계학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SAS Korea, SK텔레콤 등을 거쳐 삼성전자 CRM 담당 부장, KT AI BigData 융합사업담당 상무를 맡은 바 있다. 국내 1세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제조, 통신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풍부한 데이터 분석 관련 실무 경험을 보유한 빅데이터 전문가다.
김준환 상무는 카이스트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마치고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 삼성전자를 거쳐 SK C&C 그룹장으로서 빅데이터와 AI 부문을 이끌어왔다. 빅데이터와 AI를 현업에 적용, 사업 모델화하는데 강점을 지니고 있으며 플랫폼 구축 등 데이터 산업 전반의 탁월한 경험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디지털 전문가 영입 시도는 2금융권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의 경우 지난 6월 정인화 금융감독원 핀테크현장지원단장을 상근 감사위원으로 선임했으며 웰컴저축은행도 지난 9월 티몬과 메리츠금융서비스, 삼성SDS 등에서 근무했던 백인호 이사를 디지털 본부장에 선임했다.
기업은행의 경우 디지털이 아닌 홍보, 마케팅 부문에서 외부 인력을 채용해 눈길을 끌었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20일 개방형 직위 공개채용을 통해 조민정 홍보·브랜드 본부장을 임용하고 임명장을 수여했다. 조 본부장은 삼성전자 전략마케팅 부장, SPC그룹 브랜드전략 실장, 현대카드 Brand2실 상무 등을 지낸 홍보‧브랜딩 전문가다. 앞으로 기업은행의 광고, 언론홍보, 디자인경영, 사회공헌 등 홍보‧브랜드본부 운영을 총괄할 예정이다.
기업은행이 본부장급 인사를 외부에서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유연한 조직문화 형성 ▲외부 경쟁력 강화 등을 추구하는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인사철학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윤 행장은 지난 1월 취임식에서 “다른 금속과 섞였을 때 더 강해지는 철과 같이 IBK도 순혈주의를 벗고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디지털 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부 외부 인사 영입을 보고 순혈주의가 깨졌다고 보는데는 사실 무리가 있다”며 “대부분의 은행 고유 업무 관련 부문은 아직 내부 출신 인사가 주로 임원직을 수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다만 디지털 부문을 시작으로 외부 인사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IB, 글로벌 등의 분야에까지 조금씩 외부 인력을 수혈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부 출신 인사들이 발생시키는 시너지 효과, 은행 문화에 대한 적응 여부가 확인되면 보다 넓은 부문에서 인재 영입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