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회 열어 각계 의견 수렴
시민사회 “소비자 보호 위해 필요. 실효성 높여야”
경영계 “소송 남발 등 부담 우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정부가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보호하기 위해 이달 안에 집단소송법안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 관련 법안을 발의한다. 이를 앞두고 열린 공청회에서 시민사회는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해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정부안의 실효성이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소송 남발과 경영 부담 등을 우려했다.
법무부는 1일 집단소송법안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을 위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법무부는 연내 이 법안들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최대 1만4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BMW 차량 화재사건, DLF 사태 등 대규모 소비자 피해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일부가 제기해 대표당사자로 수행한 소송으로 미리 판결의 효력을 받지 않겠다고 신고하지 않은 모든 피해자가 함께 구제받을 수 있는 한 제도다. 우리나라는 2005년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으로 증권 분야에 한정해 도입했다. 이를 전 분야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피해자 50인 이상의 모든 손해배생 청구에 적용한다. 또한 집단소송의 소를 제기하기 전에 증거조사 절차를 마련한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도 포함돼있다.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최근 홈플러스나 농협 등의 고객정보 유출 등에 대한 위자료 청구,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티켓을 판매한 업체를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 등 소송이 종종 제기되고 있다. 현재 이러한 흩어져 있는 다수의 권리를 침해당한 당사자들을 모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집단소송 제기의 어려움은 사업자로 하여금 불공정한 행위와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도 초과이익을 얻기 위해 불법 행위로 나아가도록 하게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집단소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재계는 소송 남발로 기업활동 위축을 근거로 집단소송법 제정에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도입된 증권 관계 집단 소송을 보면 법 도입 후 15년이 넘었지만 이제 겨우 1건의 판결이 확정됐다. 10여건이 소송이 제기됐을 뿐이다”고 했다.
김주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센터장은 “증권관련 소송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해보니 구제에 효용이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10건 중 5건에 실제 배상이 이뤄졌다. 그중 가장 큰 배상은 도이치은행 등 다국적 은행 대상이었다”며 “이 제도는 우리나라 소비자가 역차별 받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으로 미국에서 17조원을 배상했지만 우리나라는 수천명의 소송이 다 인정돼도 수십억에 불과하다. 법 제도에 따라서 소비자 보호 수준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현재 정부안의 실효성을 낮다며 미흡한 점도 밝혔다. 그는 “정부안은 집단소송을 손해배상 청구에 한정하면서 부당이득반환 청구, 금지 청구, 확인 및 이행 청구 등 다양한 구제수단을 제한하고 있다‘며 ”또한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를 부분적으로 도입했으나 사법 보좌관 주재 하에 증언 조사에 관한 부분이 빠져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집단소송제 도입 시 소송 남발과 기업 경영환경 악화 등을 우려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정부안은 원고에 편향적이다. 원고가 대략적 피해를 주장하면 피고인 기업은 구체적 답변과 해명을 해야한다”며 “재판은 공평이 생명인데 원고에 편향적이다. 입증책임 전환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인데 집단소송은 일반적인 민사소송인데 여기에 대입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피고의 영업비밀 제공 의무 부분도 정부안에 따라 이를 제출하지 않으면 원고 주장이 진실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도 문제다”며 “미국은 남소방지 장치를 두고 있음에도 집단소송법 소송 건수가 지난 5년간 두 배로 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송이 크게 늘 것”이라고 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의 경우 거액의 합의금을 노린 블랙컨슈머 소송 증가 우려가 있다”며 “직업적 소송꾼이나 로펌 등장해 남용할 거라는 우려도 있다. 또한 중소기업이 집단소송을 당하면 부도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징벌적 손배제 법안과 관련해서도 의견이 나왔다. 징벌적 손배제는 상인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을 규정한 것이다.
김선정 동국대 석좌교수는 “남소 방지 장치가 없어 남소 가능성이 있다. 개별적 법률로 대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윤석찬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하도급법, 소비자 보호, 차별금지, 저작권 등 여러 분야의 특별법에서 3배 배상의 배액배상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5배 한도의 징벌적 손해배상은 이러한 경향과 배치되는 것으로 과도하다”고 언급했다.
반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상법, 소송법 등 많은 규제가 있으나 대규모 정보 유출이나 기술탈취 등 기업의 범죄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증거개시나 입증책임 전환은 징벌배상에도 적용돼야 한다. 또한 승소확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충분한 불법 억제 효과가 높지 않다. 지하철 등 무단 탑승 시 30배의 벌금을 내는 것처럼 징벌적 손해배상도 최소 30배는 돼야 기업의 행태를 바꿀 실효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손해배상 상한은 없어야 한다. 기업의 소득과 자산에 비례해서 손해배상이 돼야 일벌백계의 효과가 있다”며 “징벌적 손배제는 불법 행위 억제를 목적으로 해야 하는데 액수가 낮으면 가해자는 타인에게 위험한 이윤추구행위를 지속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