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지자체→광역지자체’ 사용 범위 확대 법안, 국회 통과 눈앞
강남권 대규모 개발이익, 서울 전역에 활용 기대
“GBC 공공기여금 사용처 이미 확정, 소급적용 어려워”
서울시·강남3구 사용 비율 놓고 이견차, 진통 예상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대규모 개발 사업지에서 발생한 공공기여금의 사용범위를 기존 기초지자체에서 광역지자체로 확대하는 법안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 강남권 개발사업의 이익을 상대적으로 기반 시설이 열악한 강북 지역에 활용하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다만 현대자동차그룹이 추진 중인 글로벌비지니스센터(GBC)에서 발생한 1조7000억원대 공공기여금은 사용처가 이미 확정돼 이번 법안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아울러 공공기여금의 사용 비율을 두고 자치구 간에 견해 차가 있어, 실제 법안이 활용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1일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러한 내용을 담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공공기여금의 사용 범위를 기존 기초지방자치단체(시·군·구)에서 도시계획 수립단위(특별시·광역시 등) 전체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법이 개정되면 강남에서 이뤄진 대규모 개발로 발생한 개발이익은 서울 전역에 쓰이게 된다. 공공기여금은 지자체가 용도변경이나 용적률 상향 등 규제 완화를 해주는 대가로 사업자로부터 개발이익의 일정 부분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제도다. 서울시에선 개발에 따른 토지 가치 상승분의 20~40%를 공공기여금으로 납부하고 있다. 현행 시행령에선 공공기여금은 개발 사업지가 있는 자치구 내에서만 쓸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강력히 추진한 정책이기도 하다. 박 전 시장은 2015년부터 서울시민 모두의 발전을 위해 강남 개발사업에서 발생한 공공기여금을 강북의 낙후된 지역에도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제시했다. 현재 공공기여금이 강남에 집중돼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올해와 내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공공기여금은 2조4000억원으로 서울 전체 공공기여금 2조9558억원의 81%를 차지한다. 

국토계획법 개정안 주요 내용 / 자료=국토교통부

반면 나머지 22개 구는 19%인 5599억원에 불과하다. 박 전 시장은 지난 7월 자신의 SNS에 “현행대로 개발이익이 강남에 집중된다면 강남과 강북 간 불균형이 더 심화될 수 있다”며 “강남3구의 개발이익을 서울시 전체가 공유하는 ‘개발이익금의 광역화’가 필요하다”고 법 개정을 촉구했다.

박 전 시장이 사망한 이후 서울시는 개발이익금 광역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마련했고, 2014~2015년 박 전시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북구갑)이 대표 발의한 이번 법안에 해당 내용이 담겼다. 법안은 여야 의원 간 견해차가 크지 않아 국토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를 무난히 통과할 전망이다. 서울시는 법안이 이르면 연말 최종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공공기여금 분배는 법 개정 이후 이뤄질 개발 사업에만 적용된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그룹의 새 통합사옥인 ‘글로벌비지니스센터’(GBC)에서 생긴 막대한 공공기여금의 경우 당장 강북 지역에 활용이 어렵다는 의미다. GBC 건설로 발생하는 공공기여금은 1조7491억원에 달한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해 말 현대차와 협약을 통해 공공기여금 사용처를 확정했기 때문에 소급 적용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GBC의 공공기여금은 대상지 인근 개발인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4000억원), 올림픽대로 지하화(3270억원), 잠실 주경기장 리모델링(2800억원) 등에 쓰일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GBC 등 강남권 개발 이익이 강남에만 독점된다는 문제 인식에서 시작해 제도 개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GBC의 경우 꽤 오래전부터 공공기여금 사용처를 정했기 때문에 새로운 개정안을 적용시키기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앞으로 이 같은 대규모 사업을 진행할 때 공공기여 광역화를 현실화하자는 의미다”고 덧붙였다.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정해질 예정인 공공기여금의 사용 비율에 대해선 이해관계자들 간 진통이 예상된다. 서울시와 국토부에선 공공기여금의 사용 비율을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간 7대 3을 검토하고 있는 반면 강남3구에선 5대 5 비율을 희망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서울시 25개 자치구가 모두 이해당사자가 된다”며 “강남3구가 절반을 사용하고 싶다고 하지만, 강북이나 상대적으로 기반 시설이 열악한 다른 자치구들의 입장은 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정안 확정 이후 세부 시행령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자치구들과 균형 있게 논의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이번 개정안에선 기부채납 받는 현금은 10년 이상 된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이나 공공임대주택 등을 짓도록 규정했다. 광역지자체는 기부채납 받은 현금의 10%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설치에 우선 사용하고 기초지자체는 전액을 쓰도록 했다. 강남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형 개발사업의 이익을 강북으로 돌려 도시계획시설 일몰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도시공원을 조성하거나 서민 주거난을 해결하는 데 쓰이는 공공임대를 짓게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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