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 상반기 글로벌 발주 전년比 50%↓···수주→건조 시간차 일감절벽
조선사 하도급갑질 과징금···부담이 하도급으로 전이되는 상황서 대책마련 시급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최근 조선업계가 수조원의 수주낭보를 연이어 전달하고 있다. LNG선 등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 및 첨단선박 수요확대로 중·장기적 전망도 어느 때보다 밝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씁쓸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감공백 우려 때문이다.
조선업은 수주에서 실제 건조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선박설계와 기자재공급 등이 갖춰지는 요건이 마련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기존 설계대로 제작한다 하더라도 최소 6개월이 소요될 정도다. 새로운 설계기법이 도입될 경우 건조까지 수년이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선(先)수주 물량의 건조가 우선되는 탓에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시간도 적지 않다.
국내 조선업계는 LNG선 수요확대로 금년도 수주실적이 전년대비 대폭 개선될 것이라 내다봤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가 문제였다. 특히 불확실성을 경계하는 선주사들이 발주를 연기시켰다. 이 같은 기조는 3분기까지 계속됐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9월까지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975만CGT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마저도 내수부흥을 위한 중국 내 발주비율이 높았다. 클락슨리서치는 3분기까지 중국이 글로벌 수주 1위라 집계했으나, 일부 국내 수주 선박들이 집계서 제외된 까닭에 실질적인 1위는 근소한 차이로 한국이 우위를 점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수주가 급감한 탓에 상당한 실익감소가 불가피했다.
수주실적이 기지개를 핀 것은 4분기 접어들면서 부터였다. 최근 3개월 새 국내 3사가 수주한 실적만 9조원에 달했다. 당초 20~30% 수준에 머물 것이라던 수주목표 달성률은 50%를 넘어 60%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수주실적이 현저히 낮았던 상반기 물량을 건조하게 될 내년 극심한 일감부족이 경계되는 상황이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최근 펴낸 내년도 주요 산업별 경기전망 보고서를 통해 “금년에 비해선 개선되겠지만, 수주절벽 영향의 가시화 등 리스크 요인이 잔재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상반기 수주절벽이 아니더라도 지난해까지 수주물량이 많았다면 이 같은 간극을 극복할 수 있었겠지만, 최근 수년 새 글로벌 조선시장의 수주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지난달 말 기준 전 세계 수주잔량은 6743CGT로 2003년 12월 이후 최저치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 중 28%를 한국이 차지하며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일감감소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올 3월 카타르 국영석유회사 카타르페트롤리엄(QP)이 100여척의 LNG선 도입계획을 밝히며 대다수 물량을 국내 3사에 몰아줬지만, 이는 수주계약이 아닌 도크확보를 위한 협약에 불과해 이 역시 실제 일감으로 나타나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산업연구원 이은창 박사는 “최근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주요 조선사들이 잇따라 수조원대 대형 계약체결 소식이 들렸지만, 예년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수치는 아니”라면서 “내년 초 수주상황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현재로선 일감감소 현상이 가시권에 접어든 상태며, 대형 조선사들과 협력·하청업체들 간 협력을 통해 위기극복이 요구된다”고 시사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팽배한 상반기에 발주를 꺼렸던 선사들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발주가 단기간에 몰렸다”면서 “국내 조선사가 수주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시차로 인해 일감부족을 피할 순 없는 실정”이라 설명했다. 이어 “매주 조(兆)단위 수주계약 소식에도 울산·거제 등 조선메카들이 울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협력·하청업체들 사이에서는 일감부족 사태와 더불어 주요 조선사들이 수십억에서 최대 수백억원대 과징금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과징금 철퇴를 맞은 대형 업체들이 일감부족 사태와 겹쳐 긴축에 나설 경우 협력·하청업체 부담가중이 어느 때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150억원대의 과징금과 검찰고발을 예고했다. 이에 앞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을 상대로도 수십억에서 수백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단가후려치기 등 하도급갑질이 주를 이룬다. 이들 빅3 외에도 중소조선사들 역시 유사한 연유로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하도급갑질로 정부가 징계를 내린 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하도급업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한계가 타파돼야 하며, 당장의 일감부족사태가 가시화 된 만큼 조속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