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핵심 놔두고 주변만 건드린 꼴”···빅클러스터 출현 우려, 확진자 감소에만 기대 거는 상황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정부가 전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일부 조정했지만, 가장 인구가 많고 밀집해 있는 수도권의 2단계를 유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같은 조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이번 정책으로 인한 효과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29일 회의를 갖고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존 2단계를 유지하되 집단감염 위험이 높은 일부 시설 방역 조치를 강화키로 결정했다. 비수도권의 경우 거리두기 단계를 1.5단계로 상향 조정하고, 일부 감염이 확산된 지자체는 2단계를 적용키로 했다.
하지만 특히 수도권의 경우 대부분 감염병 전문가들은 2.5단계 격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일부 전문가는 상황이 시급함을 강조하며 아예 3단계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이른바 ‘2단계+α’라는 조치를 내놓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 조치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격상하는데 힘들어 하고 있다”며 “수도권도 중요하지만 지방의 경우 일률적으로 2단계로 올리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오는 12월 1일과 2일 발표되는 신규 확진자가 중요하다”며 “확진자가 다소 수그러들면 지난주 수도권에 2단계로 격상한 효과가 나오는 것이고, 계속해 증가하면 2단계로는 부족하다는 의미이므로 결국 2.5단계로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의 수도권 2단계 유지 조치에 대해) 납득이 가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경제와 국민 피로감을 근거로 2단계 유지를 결정했지만, 이미 수도권은 코로나19 폭발 상태”라며 “지난 주말 나온 400명대 확진자는 실제로는 600-700명 규모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수도권 조치를 2단계+α라고 하는데, 목욕탕에서 사우나와 한증막만 사용이 금지된다고 한다”며 “어차피 이 곳은 온도가 높아 코로나바이러스가 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이나 조치가 핵심을 배제한 채 주변 정황만 건드린 것이라는 언급으로 풀이된다.
김 교수는 “이번 대책은 실효적 조치가 아니다”라며 “강조하지만 기온이 낮고 국민들 경각심도 낮아져 지난 8월 2차 유행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돌입한 수도권 2단계는 코로나19 확산 추세를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기세를 꺾을 수는 없다”며 “2단계+α 조치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번 정부 조치는 자영업자를 배려하며 경제 상황을 많이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우나 등 확진자들이 다수 발생한 몇 곳을 제재하는데 그쳤다”고 말했다.
천 교수는 “정부는 선제검사를 다수 진행해 무증상 감염자를 찾아내고, 5인 이상 모임을 금지시켜 코로나19 확산을 봉쇄하고, 검사시스템을 약국에서 판매하도록 해 누구나 쉽게 코로나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1일부터 신규 확진자가 감소하면 수도권 2단계 격상 효과로 분석이 가능하다”며 “2단계+α 조치 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엄중식 가천대학교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일일 신규 확진자 등 정부가 규정한) 기준대로라면 현재 수도권은 2.5단계가 맞다”며 “(정부 조치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엄 교수는 “(2.5단계 격상으로) 짧은 시간에 3차 유행을 정리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다”며 “유행이 길어지고 국민 피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정부가 자신 없어 보이고, 뚝심의 리더쉽도 보이지 않는다”라며 답답해했다.
엄 교수는 “지난주 시작된 수도권 2단계 효과는 이번 주 확진자 400-500명대가 유지되는 효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로 요양시설 등에서 ‘빅클러스터’가 나올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빅클러스터는 글자 그대로 수백명 감염자가 발생하는 집단을 지칭한다. 그는 “빅클러스터가 나오면 확진자 발생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의료기관도 부담되고, 국민들이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엄 교수는 “그동안 우리가 1차와 2차 유행을 겪었는데, 현재 상황은 더욱 나쁘다”라며 “상황은 좋지 않은데 약한 수준의 방역 조치를 진행하니 예측이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2단계+α조치는 2단계와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가 정해놓은 기준을 따르지 않고 결정한 2단계+α 조치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며 “전문가들이 정부 책임론을 거론하기 시작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