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시중은행에 우대금리 축소 주문
섣부른 대출 규제로 금융소비자 부담만 키워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전날(26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5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역대 최저수준의 0.5% 금리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예금금리도 떨어졌다. 그러나 의아한 점이 있다. 대출금리는 요지부동을 넘어서 오히려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상적으로 대출금리와 예금금리는 시장금리와 흐름을 같이한다. 대출금리는 시장금리에 은행이 정한 가산금리를 더해 산정하고, 예금금리는 시장금리에서 예치비용과 예금보험료, 업무원가, 해당 상품의 적정 마진을 빼는 방식으로 산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들어 두 번의 기준금리 ‘빅컷’을 단행하면서 시장금리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추세다. 실제로 지난 5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수준인 0.5%까지 인하하자 지난 7월 은행들의 대출금리는 2%대를 기록하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지난 9월 은행권의 대출금리가 4개월 만에 반등하더니 지난달에는 일부 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금리가 3%를 넘어섰다. 기준금리가 여전히 0.5%로 역대 최저치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대출금리는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과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고자 하는 일명 ‘영끌족’의 등장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나자 정부는 이를 틀어막기 위한 규제책으로 금리 인상을 내걸었다. 시중은행에 우대금리 축소를 주문한 것이다. 우대금리를 줄임으로써 대출 금리가 높아지면 상환 부담이 커져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과열된 부동산 시장도 잠재울 수 있으리라는 셈법이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입김은 의도한 방향과 달리 작용했다. 금리 인상과 대출 한도 축소로 잡히길 바랐던 대출 수요는 제2금융권으로 번져나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말 저축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29조5913억원으로 3개월 만에 1조8267억원이 증가했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이다. 제1금융권에 대한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가 제2금융권의 대출을 키우는 ‘풍선효과’를 낳은 셈이다.

결국 남은 건 금융소비자들의 부담이다.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만한 신용도와 거래실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전보다 더 큰 금리를 부담해야 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이자가 높은 제2금융권에 손을 벌려야 하게 됐다. 일각에선 제1금융권에 가야 할 소비자들이 제2금융권을 찾으면 기존 2금융권의 주요 고객이던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문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폭증하는 대출 수요를 막고 나아가 과열된 부동산 투기 시장을 잡겠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시장에서는 ‘대출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정작 대출이 정말로 필요한 일반 서민들은 오히려 대출 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소비자의 부담을 늘려 가계대출 급증을 잡겠다는 발상이 성급한 대책임을 방증하는 결과다. 대출 옥죄기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금융 취약계층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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