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전금법 개정안’ 추진에 반박···“금융결제원 안정성 저하 우려”
한은법 개정안 추진에는 ‘신중’···“양 기관 갈등 양상, 국민들에게 죄송”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이주열 한은 총재/사진=한국은행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이주열 한은 총재/사진=한국은행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한국은행과 금융위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직접 해당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 총재는 26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전자금융거래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은의 영역과 관련해서 ‘지급결제청산업’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우려를 표하는 것”이라며 “지급결제시스템 운영 관리는 중앙은행의 태생적 업무이자 고유의 기능”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결제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개입하는 것”이라며 “결제시스템이 마비될 경우 국가 경제에 혼란이 초래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필요할 때 유동성 지원을 하는 등 결제 리스크를 줄여야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중앙은행이 지급결제 시스템 운영 관리에 핵심적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며 “다른 어느 나라에도 예외는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 18일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장에게 전금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전금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신설하고 금융위가 전자지급거래청산기관에 대한 허가·취소, 시정명령, 기관 및 임직원 징계 등의 권한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핀테크·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로 자금 세탁, 거래 중단 등의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에 전자지급거래청산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해 디지털 결제의 안정성을 확보해야한다는 것이 금융위의 입장이다.

하지만 한은은 한은법에 명시된 금융통화위원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은법 28조는 금통위로 하여금 지급결제제도의 운영 및 관리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심의·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전금법 개정안은 금융기관간의 청산 절차가 필요없는 핀테크·빅테크 업체 내부거래까지 지급결제시스템에서 처리하도록 하고 있어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 총재는 “금융위는 빅테크의 결제 유형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니까 통제를 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그 수단으로 빅테크 기업의 내부거래까지도 금융결제원의 시스템에서 처리하도록 의무화하고 금융결제원을 포괄적으로 감독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결제원은 금융기관간의 자금이체 정산 기능을 수행하는 곳인데 핀테크 기업의 내부거래까지 포함하게되면 금융결제원의 안정성이 저하되지 않겠나”라며 “포괄적 업무 감독권을 갖겠다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고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그는 “금융결제원은 출범 이래 한은이 아무 사고 없이 안정적으로 관리해왔다”며 “중앙은행의 권한을 침해하는 단순해보이지만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은이 지급결제 제도 운영과 감독에 대한 권한을 명시하는 한은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총재는 “(한은법 개정은) 한국은행이 맞불을 놓는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조심스럽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양 기관이 힘을 합쳐도 어려운 것이 많은데 지금 이런 문제가 불거져서 국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한은 금통위는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0.50%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큰 만큼 금통위는 향후 통화정책도 완화적 기조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유동성 회수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코로나 대응과정에서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펼쳤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가계부채 증가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빠른 속도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금융기관의 손실 흡수 능력과 재무건전성이 양호하기 때문에 당장의 리스크는 아니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또한 “통화정책을 운용할 때는 금융안정과 거시경제를 같이 놓고 봐야한다”며 “거시경제 측면에서 보면 지난 2분기 저점은 지났지만 회복세가 어떻게 될지 워낙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 회복시기나 강도는 코로나19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어 섣불리 (유동성을) 거둬들일 단계는 아니다”며 “경제 회복이 좀 더 가시화되고 안정적인 성장세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면 미리 미리 완화조치를 단계적으로 정상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